아래 글은 2002. 4. 11 한국NGO학회(회장 김영래)가 '지방화시대와 NGOㆍ언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주최한 학술회의 논문입니다.

지방화와 지역언론의 과제

정 상 윤 (경남대 정치언론학부 교수)

Ⅰ. 서 론

지방자치제는 민주적 자기결정성의 원리에 입각한 시민자치를 의미한다. 한편 시민의 자기결정성의 원리가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시민 언론의 역할이자 언론의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즉 지방자치제도의 성공적인 정착과 지역사회의 독자적인 발전을 위해서 지역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언론은 지역사회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지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제반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혀 주고 해결방안을 모색해 주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발전방향과 다양한 문제점들을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논의할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바람직한 지역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처럼 지방자치제의 정착은 지역언론의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 되며, 또한 지역언론의 활성화 없이는 지방자치 및 지역사회 발전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지방자치는 지역 실정에 맞는 행정을 펼칠 수 있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과정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방자치의 기본 이념은 민주주의와 지방분권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에 의해 시행된 중앙 중심적인, 그러면서 특정지역 편중적인 개발정책이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지난 10년간의 지방자치제는 형식적인 지방분권에는 기여했으나 분권의 물질적 기초인 자원의 분산에는 실패했다고 하겠다. "분권이란 중앙에서 하위수준으로 정치적 권력과 권한, 행정적 자율권과 집행권이 이전되는 것을 의미하고, 분산은 중앙집중의 여러 자원들이 지리적, 공간적으로 이양되는 것을 뜻한다"면, "지금의 지방자치는 분산이 없는 분권의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정지창, 2001).

그 결과 오늘날 '지방의 부재' 현상이 나타났고, 이러한 현상은 '지역언론의 부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지역언론은 상당 부분 황폐화되어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지역언론의 문제는 그 언론이 속해 있는 지역사회의 구체적 현실과 분리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즉 지역언론의 내적인 문제에만 국한한다면 지역언론의 총체적인 모습을 결코 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지역언론의 문제를 단순히 해당 언론이나 지역의 문제로만 간주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 단계, 한국에 있어서 지역의 상황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은 어떠했기에 오늘날의 상황을 초래했는지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밝혀야만 지역언론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남한 면적의 12%를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이 은행 예금과 대출의 65%, 대기업 본사의 88%, 공공기관의 84%, 대학 및 연구기관의 61%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다보니 남한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수도권에 밀집되는 '블랙 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문화 영역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문화기반 시설과 문화행사의 서울 집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전국에서 거두어들인 문예진흥기금의 80%를 서울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화의 서울 집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언론 영역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언론매체의 중앙집권화에 의한 거대 매체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수 언론재벌에 의한 매체독점과 여론독점은 작은 매체의 등장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 지역분권화의 길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국 신문시장의 70%를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차지하고 있고 방송의 경우도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70%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지역언론의 핵심에는 지방일간지와 지역방송이 있다. 우선 2001년 6월 현재 전국적으로 61개의 지방일간지가 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발행되고 있는 지방일간지가 언론의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한편 지역방송의 경우 프로그램의 공급을 거의 전적으로 중앙의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있는 방송사의 구조적 한계로 인하여 지역언론으로서의 비중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방송체제는 구조적으로 중앙 집중화되어 있어서 지역방송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방송이 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촉진하기보다는 획일적인 '여의도 문화'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 2001년 7월 6일 한국지방자치학회가 부산에서 '지방분권을 위한 부산 선언'을 한데 이어, 9월 3일 지방대학 교수들이 모여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전국 지역 지식인 선언'을 발표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에도 모든 분야가 중앙 집중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어쩌면 지역사회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지방 정치에 있어서 주민들의 자기 결정성을 높이고, 참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이 선언에서는  지방자치의 내실화  주민자치의 참여민주주의  지역 패권주의 극복  지역중심의 발전모델  세원, 인재의 분배  지방분권특별법 재정 등을 주장하고 있다(변동현, 2001).

서울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면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지역사회 현실 속에서 지역방송을 비롯한 지역언론은 지방자치제도의 정착과 실현을 위한 견인차의 역할도, 지역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여론 선도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 언론이 존재한다는 것, 언론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지방자치, 또는 지역사회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모든 것이 중앙 집권화 되어 있고, 지역사회보다는 서울이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언론은 '지역'의 의미와 중요성을 주민들에게 부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기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성호(2001)의 연구에 의하면 지역에서의 중앙방송 대비 지역방송 프로그램의 평균 점유율(경쟁력)은 52% 정도로 낮게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장르는 지역 보도와 지역 정보, 지역 스포츠 등이었다. 실제로 몇 몇 지역방송사의 경우 밤 9시 뉴스를 기준으로 할 때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relay 뉴스보다 지역뉴스의 시청점유율이 상승하여 70%이상의 경쟁력을 보이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역방송이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재할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점에서 본 논문은 지방자치와 지역언론의 관계를 살펴보고, 지방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지역언론이 해야할 과제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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