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모조석굴암 계획 백지화해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의 보존상태나 앞으로의 보존문제가 심각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석굴암을 후세에 보전하여 남겨두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방식의 관람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불국사와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모조품 건립계획은 백지화하여야 한다.

외국에서도 훼손의 위험이 있는 문화유산은 공개하지 않고 모조품을 원형과 꼭 같이 만들어 일반에게 관람케하는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방식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기존의 석굴암에서 불과 100미터 밖에 안 떨어진 곳에 석굴암 전시관과 편의시설, 주차장을 만들어 관광명소로 삼게 되면 기존의 석굴암을 훼손하게 된다는 점이다.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하며 주위환경까지도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문화유산보전원칙에 위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추진해온 불국사쪽은 가까이 짓는 것이 역사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석굴암은 토함산 정상 가까운 곳에 동해를 바라보는 위치에 석굴을 파서 만든 조용한 성소이다. 당시의 시대정신이나 석굴암 창건의 뜻을 살리고자 한다면 석굴암 턱밑의 모조품은 석굴암이 간직해온 정신을 훼손함으로써 종교적 예술적 의미를 퇴색시킬 우려가 있다.

석굴암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융성했던 문화의 결정체이다. 건축과 조각 종교와 수학 천문학 기하학 물리학 등 온 분야가 응축되어 있는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수나 개수가 졸속으로 흘러서 그냥 놔둔 것만도 못한 예는 허다하다. 새로운 석굴암계획이 급하게 진행됨으로써 겉모습만 흉내낸 모조석굴암이 될 우려 또한 크다. 석굴암 본연의 아름다움이나 경건함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석굴암 건립만큼이나 정교한 계획이 각계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다음에 지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출처 - 한겨레 2002. 4.16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