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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 여론권력서 자유로운가
	2004-08-04
사법부, 여론권력서 자유로운가 언젠가 초등학생인 딸로부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름대로 민주주의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조직 형태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특히, 민주주의의 요체는 삼권분립이라 할 수 있으며, 삼권분립이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란 분식(粉飾) 민주주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처럼 삼권분립이 중요한 것은 사법부가 정치·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사법부의 역사는 정치권력과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 유신(維新)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미래로 갈 것이냐”라는 질문을 우리 국민에게 던진 바 있다. 사실상 우리에게 있어 유신이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미운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풍요와 독재라는 이분법적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준 우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유신시대 때 우리 사법부는 정치·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와 현실 속에서 공정한 심판자로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최근 사법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3.7%가 여전히 사법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법관 제청을 놓고 발생한 논란도 결국 그 근저에는 국민들의 불신을 바꿔보자는 사법부의 계획된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유신시대 때 논의가 되던 사법부의 독립성 논란과 현 참여정부 아래에서의 사법부 독립성 논란은 그 본질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 법원장은 “개혁성과 진보를 내세운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의견이 법원에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은 사법부의 심각한 위기”라고 지적했었다. 이러한 지적은 현재의 사법부 독립성 논란은 더 이상 정치·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신흥 권력인 ‘여론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30년 전에 선진국이 겪은 이데올로기적 논쟁으로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이라는 이분법적 도그마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법부 개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법부는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항상 공정한 잣대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헌법상의 의무를 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법치주의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할 때에만 꽃을 피울 수 있는 난(蘭)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 법관이 정치권력이나 여론권력에 편승하여 양심을 저버리고 시류에 편승한다면 이는 대통령이 청산 대상으로 지적한 유신시대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이다. 더욱이 대법관은 정치권력과 여론권력으로부터 독립, 공정한 절차에 따라 치우침이 없이 재판을 해야 할 중차대한 임무를 담당하는 사법부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대법관 인사파동에서 보듯이, 내규 기관에 불과한 자문위원회와 특정 시민단체가 추천한 후보자 가운데 1인을 대법관으로 제청한 사실은 우리 사법부가 다시 정치권력과 여론권력에 편승한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봉건 귀족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절대왕정 시대가 탄생했으며, 절대왕정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법치주의가 탄생했다. 즉, 유럽의 법치주의는 소수의 절대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자 탄생한 사법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이라는 이분법적 이념 논쟁은 결국 국민의 불안감을 급속도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한 국민의 권리보호자로서의 역할이 요구된다. 진보와 개혁은 하나의 이념일 뿐 국민의 권리와 의무 그 자체는 아니다. 부디,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여론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국민의 보호자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소송연구회 회장) 출처 - 문화일보 2004. 8. 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