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保파탄 원인 따로있다

최근 의료계와 언론계 일부에서 ‘의약분업 되돌리기’, ‘선택분업’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논란이 의약분업이 시행되기 이전에 활발히 진행되었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이미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되돌린다면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부담과 분열, 갈등이 커질 것은 당연하다.

특히 ‘선택 분업’이 조제를 원하는 곳에서 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면 그것은 분업이 아니다. 분업은 처방을 의사가 하고, 조제를 약사가 맡는 전문성의 분리를 뜻하는 것이다. 의사가 약사의 업무를, 약사가 의사 업무를 했던 과거의 행태를 바로잡아 업무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자는 데 분업의 목적이 있다. 이처럼 의사와 약사의 전문성을 구분해야 할 이유는 ▲의사와 약사의 직역간 업무의 상충과 갈등 ▲처방 약의 비공개로 인한 리베이트 등 부조리 척결 ▲환자의 알권리 존중 ▲약의 오·남용 해소 등에 있다. 만약 조제 장소를 환자의 선택에 맡긴다면 대부분 병·의원에서 조제하는 것이 편하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분업이라는 제도 자체가 파기되는 것이다.

분업의 취지 중 하나는 약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제였다. 병원에서 약을 취급하고 약국에서도 의사의 처방 없이 조제하는 예전의 우리 환경 아래에선 약의 오·남용이 불가피했다. 규제에는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이 불편을 감수한 긍정적인 효과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나게 된다. 지금의 어린 세대가 후에 의약분업 장점의 혜택을 보게 된다. ‘불편’만이 문제라면 세계 모든 나라 국민들은 왜 불편을 스스로 택하는 것일까 생각해야 한다.

분업은 약을 남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바꾸어 가급적 의사의 진단에 따라 투약을 하도록 규제하는 제도이다. 의사의 진단을 앞세운 것은 오판(誤判)의 확률을 줄이자는 뜻으로 약 사용 관행의 ‘업 그레이드(Up Grade)’를 의미한다.

업 그레이드에는 비용 증가가 당연히 따르게 되므로 필요한 재원도 함께 준비되었어야 한다. 정부는 의약분업을 나름대로 준비했으나 의료대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재정 확보없이 의료수가를 인상,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정부의 실책은 의약분업 시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료대란 수습의 미숙에 있다. 의약분업 때문에 보험재정이 파탄났다는 지적은 사태의 본질을 잘못 본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1996년부터 적자가 시작되었고 수입(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늘리지 않는 한 파탄이 나게 되어 있었다. 의료계 파업을 수습한다는 것이 보험재정 파탄의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이제는 보험 재정을 적게 들이기 위해 제도상의 부분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비싼 약 사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약제비 절감이 건강보험 재정 절감 방법 중 가장 핵심 과제이다. 효과가 비슷하다면 동일한 성분의 약 중 상대적으로 값싼 의약품을 사용하면 건강보험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처럼 의사들이 내리는 약 처방을 상품명이 아니라 성분명(또는 일반명)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

독일은 늘어나는 보험 재정을 감당할 수 없어 이미 지난 2월23일 의회에서 성분명 처방을 결의하였고, 일본도 참의원의 발의로 성분명 처방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도 당장 전체 의료기관에서 성분명 처방이 어렵다면 보건소나 국·공립병원부터 시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랜 기간 국민들이 사용해 보고 안전성이 확립된 약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없는 일반의약품으로 풀어서 국민불편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 장우성 / 서울시약사회 연수교육원 운영위원장 )
출처 - 조선일보 2002. 4. 13 기고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