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구법제개혁연구소 제4회 세미나 기조발제문]

경영판단에 대한 사법적 심사의 한계

석종현 교수(단국대, 한국법제발전연구소 소장/시민회의 공동대표)

Ⅰ. 문제의 제기

지난 2001년 12월 27일 수원지방법원 민사합의 7부는 참여 연대 등이 삼성전자의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경영상의 잘못으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의 전현직 이사 14인에게 총 977억 6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동판결은 ① 이천전기에 대한 출자 및 지급보증행위로 생긴 손실발생에 대한 배상책임문제, ② 보유 투자자산의 부당한 저가매각으로 인해 회사에 끼친 손실에 대한 배상책임문제, ③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공여한 금액에 대한 배상책임문제, ④ 계열사(중앙일보)와의 부당내부거래행위에 대한 책임문제, ⑤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에 대한 부당내부거래행위에 대한 책임문제 등에 대하여 사법판단을 하였는데, ④와 ⑤의 경우는 원고 등으이 주장을 받아 들이지 않았고, ①②③에 대해서는 원고 등의 주장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손해배상 판결을 하였다.

① 이천전기에 대한 출자 및 지급보증행위의 경우 : 문제된 행위는 삼성전자와 별다른 거래관계가 없었고 재무구조가 극히 부실했던 이천전기에 대해 이사회 결의(97.3)로 거액 출자 및 지급보증(총 1,999억원)을 하였고(당시 이천전기는 그룹계열사인 삼성중공업이 경영권을 행사), 이천전기가 퇴출판정(98.6)을 받게 됨에 따라 약 1,904억원(총지출액 1,999억-매각대금 95억)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법원이 인용한 배상판결액은 276억원(청구액 1,904억원)이며, 그 판결이유는 인수 당시 이천전기의 재무상황은 위험성의 정도가 통상적인 범위를 훨씬 넘어선 비정상적인 상황인데, 피고는 이사회 개최전은 물론 당일에도 충분한 정보에 의한 검토를 하지 않아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해태하였다는 것이다.

② 보유 투자자산의 부당한 저가매각의 경우: 문제된 행위는 주당 1만원에 취득한(94.4) 삼성종합화학 주식 2000만주를 이사회 결의(94.12)로 주당 2600원의 저가로 계열사인 삼성건설과 삼성항공에 매각하였다는 것이고, 법원이 인용한 배상판결액은 626억(청구액 1,480억)이며, 그 판결이유는 처분 당시 삼성종합화학의 주식가치는 보수적인 평가방법인 순자산가치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2,600원을 훨씬 상회하는 5,733원에 이르고 있었고 6,600원에 거래된 실례(93.6)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1시간 동안의 토론 끝에 삼성종합화학에 대한 지배주주로서의 지위를 양도하는 결과를 빚는 2,000만주의 주식을 취득가액의 1/4로 처분하기로 결의하였다는 것은 이사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③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행위의 경우: 문제된 행위는 90～92년,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200억원 뇌물을 제공(그중 75억원은 삼성전자로부터 세탁 조성)하였다는 것이고, 법원이 인용한 배상판결액은 75억원(청구액 75억원)이고, 그 판결이유는 뇌물공여 행위는 범죄행위이며 경영판단으로 보호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원지방법원의 위 판결을 계기로 기업의 경영판단의 결과를 사법판단의 대상으로 한 것이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그에 대한 찬반 양론이 대립되고 있다. 특히 경제계는 동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비판적 견해를 취하였고, 삼성전자 역시 2002년 1월초 이미 항소를 제기함으로써 판결을 승복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경제계가 동판결을 승복하지 않는 이유는 기업의 경영판단에 대해 사법판단을 허용하게 되는 경우 그것은 기업가 정신을 크게 떨어 뜨리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기업환경을 위축시키게 됨으로써 자유시장경제를 죽일 수 있게 된다는 점에 논거를 두고 있다. 이 점에서 이른바 경제5단체가 동판결에 대하여 발빠르게 비판적 입장을 천명 경제계의 입장은 이 글의 부록에 자료로 수록하였다. 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로 이해가 간다. 법학도인 필자의 경우는 사법판단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논리하에 접근하여 동판결을 비판하는 글을 매일경제 석종현, ‘경영판단’ 책임추궁 곤란, 매일경제 2002.1.5. 5面 참조.에 기고한 바 있다.

수원지법은 경영판단의 책임을 사법적 잣대로 판결함으로써 그것이 법적 책임이라는 태도를 취하여 사실상 사법심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사법권 역시 그 본질에서 오는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헌법의 기본정신은 사법적 심사에도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법권의 행사가 기업활동과 관련해서는 행해지는 경우에는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하고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법학을 전공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국가권력의 행사는 그것이 입법권이든 사법권이든 행정권이든 모두 헌법의 이념이나 헌법의 기본정신, 헌법의 기본원리 등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 범주내에서 헌법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즉, 合憲的 국가권력의 행사만이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임원들의 경영판단은 기업의 내부활동 속하며, 이와 같은 내부활동에 객관법질서와 관련하여 생긴 분쟁에 대한 법적용기관인 법원이 나서서 사법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기업의 경제활동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법원이 경영판단에 대한 사법적 심사를 하면서 간과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질서의 기본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고, 그와 같은 헌법의 기본정신이 사법권행사와 관련해서 제대로 존중되는 지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공법학도의 연구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경영판단의 문제를 기업의 내부활동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논리를 전제로 할때 성립하는 사법심사의 한계를 공법이론을 참조하여 검토하기로 한다.

Ⅱ. 사법권의 본질에 의한 한계

법원조직법 제2조 제1항은 “법원은 헌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법률적 쟁송을 심판하고, 기타 법률에 의하여 법원에 속하는 권한을 가진다”라고 하여 민사사건은 법률적 쟁송일 것을 규정하고 있다. 법률적 쟁송이란 당사자 사이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관한 분쟁으로서 법령을 해석?적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쟁송을 의미한다. 사법심판의 대상이 법률적 쟁송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법권의 본질에서 나오는 한계에 해당한다 석종현, 일반행정법(상), 제9판, 삼영사. 2002, 795면 참조.

즉, 사법판단은 법률적 쟁송이어야 하고, 처분권주의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사법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당사자간의 구체적인 권리?의무에 관한 쟁송이어야 하며, 법률적용에 관한 쟁송이어야 하는 것이다.

법률적용에 관한 쟁송과 관련하여 공법학의 영역에서는 예를 들면 학술?예술상의 문제나 재량행위 및 통치행위 등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학술?예술상의 분쟁은 당사자간의 구체적 사건 또는 분쟁인 경우에도 법령적용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재량행위는 행정의 편의성?합목적성에 관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며,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사법권 본래의 성질과 사법권과 행정권의 분립의 취지에 비추어 사법판단에 친숙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법권은 그 본질에 의한 한계가 인정되는데, 이를 경제법의 영역이라고 해서 다르다고 할 수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고도의 판단과 위험이 수반되는 경영의사결정은 사법적 판단에 친숙하지 못하다.

판결은 법을 적용해 무엇이 정당한 법인지를 선언하는 국가작용인데. 경영판단은 회사 경영권의 속하며, 그 판단은 규범적 규율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법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법작용인 재판이 그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 비법적 문제 마저 판단하는 경우에 그 자체로서 사법적 정의에 반하게 된다. 따라서 재판은 법적 문제에 한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사법권의 본질적 한계에 속한다 할 것이다.

Ⅲ. 경영판단은 객관법질서가 아니므로 사법심판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통치질서나 경제질서는 법에 의해 규율된 법질서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성문규범으로 규율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법규범의 흠결 영역에 대해서는 보충적으로 적용되는 불문법인 관습법이나 판례법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법규범은 그것이 성문규범이든 불문규범이든 모두 객관법(objektives Recht)이기 때문에 주관적 사항들을 규율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기업의 설립과 운영 등의 객관적 질서에 관해서는 법규범에 의한 규율의 대상이 되며, 이와 같은 법규범에 의해 규율된 질서가 경제질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권의 본질적 요소에 해당하는 경영의사결정은 주관적 가치를 지닌 행위이므로 객관법질서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객관법에 의한 규율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경영자의 역할은 위험에 도전해 성과를 모색하고 새로운 사업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기 때문에 모든 경영의사결정에는 항상 위험성이 상존하며, 주관적 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관적 결정으로서의 경영판단도 법질서의 범위내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객관법질서 예컨대 상법 제382조의 3의 규정에 의한 이사의 충실의무(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에 위반한 경우나 상법 제399조의 규정에 의한 회사에 대한 책임(이사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해태한 때에는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및 상법 제401조의 규정에 의한 제3자에 대한 연대책임(이사가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그 임무를 해대한 때에는 그 이사는 제3자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또는 민법 제750조의 규정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위법한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등 를 위반하는 경우, 예컨대 경영의사결정의 과정이 違法하거나 社會法益을 침해하는 때에는 그것은 법적인 문제가 되므로 사법심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경영판단이 법적 한계 예를 들면 경영판단의 전제가 되는 사실에 대하여 선관주의의무를 다하였거나 의사결정의 과정이 통상의 기업인으로서 합리적으로 행해진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의 범위내에서 행해진 때에는 그것은 경영권의 당부의 문제가 될 뿐 사법심판의 대상이 되는 위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경영판단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며 복잡다양한 제요소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 예측적 정책적인 판단능력을 필요로 하는 종합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전삼현, 회사법의 쟁점, 자유기업센타, 1999, 34면 참조.

이와 같은 論理와 관련하여 행정법이론에서는 행정재량이론이 확립되어 있다. 즉, 가변적인 행정현실을 규율하는 행정법규는 행정기관에게 재량권을 허용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재량행위라고 한다. 재량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와 관련하여 이론은 그것을 자유재량행위와 기속재량위로 구분하고, 자유재량행위는 행정의 합목적성 판단에 관한 행위, 즉 법적 판단행위가 아니므로 그에 대해서는 사법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다만, 재량권행사가 그 내?외적 한계를 벗어나는 때(즉 재량권의 일탈 및 재량권의 남용)에는 위법한 행위가 되어 사법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본다.

Ⅳ. 법원은 경영판단을 존중하여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경영판단이 지닌 주관성 때문에 그와 관련하여 분쟁이 생긴 경우라도 법원은 객관법질서를 위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영의사결정을 존중하여야 한다. 이를 경영판단 존중의 원칙이라 할 수 있는데, 경영판단 존중의 원칙이란 법관이 사법판단을 함에 있어 경영자들의 경영판단행위에 과실이 있더라도 그 책임을 면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문지 역(원저자 :프랭크 H 이스터브룩/다니엘 R. 피셀), 회사법의 경제학적 구조, 자유기업센터, 1999, 162면 이하.

이와 같은 원칙의 배경에는 경영자들의 의사결정이 법원의 엄격한 심사를 일상적으로 받아야 한다면 투자자들의 富가 감소할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다. 왜냐하면 판사들의 경영판단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법원은 회사경영상 이사의 판단이 잘못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만큼의 전문성이나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일반적이며, 기업활동에는 모험의 요소가 수반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사의 경영판단을 법원이 사후에 그 시비를 가리는 것은 문제가 소지가 있기 때문에 법원은 이사의 경영판단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한다. 전삼현, 상게 회사법의 쟁점, 32면 참조.

경영자들의 경영판단에 대한 엄격한 사법판단을 한다면 경영자들은 책임부담의 공포에 빠져 경영판단에 더욱 신중하게 될 것이며 결국은 경영자의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게 됨은 물론 기업을 할 의욕을 잃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영미법계의 법원은 경영판단 존중의 원칙을 인정하여 경영자의 전문인으로서의 판단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전삼현, 상게 회사법의 쟁점, 40면 참조.

슘페터(J.A. Schumpter)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위헌투자형 타입이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는 것으로 보면서 이러한 위험정신을 기업가정신(enterpreneurship)으로 지칭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있어 기업가정신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과감하고도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며, 그 결과 위험선호적 의사결정이 효과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위험선호적 의사결정에 책임을 물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법제처장 박찬주, [권두시론]경영상 의사결정에 관한 법적 평가, 고시연구(2002.4.), 15면.

실패한 경영판단에 대해서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경우 경영의 위축을 초래하게 되며, 특히 개개인 에 대한 고액의 배상책임을 부과할 경우 경영자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여 의욕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은 기업의 경영의사 결정 과정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지만, 실패한 경영판단에 대해서까지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경영 판단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확립되어 있다(Business Judgement Rule). 이같은 원칙하에 미국의 경우 대표소송 제기시 이사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소 제기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으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원회의 판단이 존중되고 있다 .

더욱이 경영의사결정은 가변적인 상황구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당부를 판단하는 법원은 의사결정과 관련된 모든 상황과 결과를 경영자의 입장에서 재현하여 그 당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와 관련하여 행정법이론에서는 判斷餘地理論 석종현, 전게 일반행정법(상), 264면.

이 인정되고 있다. 행정처분의 요건을 불확정개념으로 규정한 경우에 그 해석 적용은 인식영역의 문제이며, 사안에 따라서는 가치평가와 더불어 미래에 향한 행정예측을 필요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불확정개념이 규범(가치)적 개념인 경우에 그 적용은 유일한 정당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법적용이지만, 일정한 경우 그에 관한 행정청의 판단에 대하여 법원의 심리에 갈음하는 판단여지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판단여지가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행정청의 판단을 존중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행하여야 하며, 이 범위내에서 판단여지가 인정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판례는 시험결정, 공무원의 근무평정, 전문가 또는 이익대표자로 구성된 독립한 합의제기관의 가치평가적 결정, 행정예측결정 등의 경우에 판단여지를 인정하였다 석종현, 상게서, 265면 이하 참조. 독일의 경우 Vgl. Hartmut MSaurer, Allg. VerwR, 13. Aufl., Verlag.C.H.Beck, 2000, S. 138ff.

시험은 전문적?학문적 평가를 하는 것으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며, 특히 試驗狀況은 대체로 재현할 수 없고 사후적 사법심사에 필요한 구체적 사안에 있어 다른 응시자의 응시실력과의 비교가 결여되는 상황구속적인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판단여지의 이론에 비추어 볼 때 기업의 경영의사결정은 항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며,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이므로 그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 비록 사법심판의 대상이 된 경우에도 법원은 경영판단의 상활구속성을 고려하여 원고의 주장을 기각하는 판결을 함으로써 경영의사결정에 판단여지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국가배상사건에서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행위로 인하여 생긴 손해에 대하여 국가가 배상책임을 진 경우에 공무원에 대한 구상권을 인정하는 경우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배상법은 공무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 大判 1996.8.23. 96다19833. 공무원이 직무상 불법행위를 한 경우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외에 공무원 개인도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지만, 공무원에게 경과실뿐인 경우에는 공무원 개인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바, 그 경우 공무원의 중과실이라 함은 공무원에게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위법, 유해한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 경우임에도 만연히 이를 간과함과 같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를 의미한다.

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인정하지만, 경과실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경과실의 경우에 구상권을 인정하게 되면 공무원에게 너무 가혹함은 물론 공무집행이 오히려 위축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석종현, 전게 일반행정법(상), 622面; 홍정선, 행정법특강, 2002, 444面.

이와 관련하여 판례 대판 1996.2.15. 95다38677.는 “공무원의 직무상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변제 자력이 충분한 국가 등에게 선임감독상 과실 여부에 불구하고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켜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되,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경과실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그 직무수행상 통상 예기할 수 있는 흠이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공무원의 행위는 여전히 국가 등의 기관의 행위로 보아 그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도 전적으로 국가 등에만 귀속시키고 공무원 개인에게는 그로 인한 책임을 부담시키지 아니하여 공무원의 공무집행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반면에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고의·중과실에 기한 경우에는 비록 그 행위가 그의 직무와 관련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행위는 그 본질에 있어서 기관행위로서의 품격을 상실하여 국가 등에게 그 책임을 귀속시킬 수 없으므로 공무원 개인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키되,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그 행위의 외관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공무원의 직무집행으로 보여질 때에는 피해자인 국민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 등이 공무원 개인과 중첩적으로 배상책임을 부담하되 국가 등이 배상책임을 지는 경우에는 공무원 개인에게 구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책임이 공무원 개인에게 귀속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봄이 합당하다.” 고 판시하였다.

또한 상법 제401조의 규정은 ‘이사가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때에는 그 이사는 제3자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반대해석하면 이사에게 경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국가배상법의 입법취지를 경제법의 영역에서도 살리는 논리를 취하고 아울러 상법 제401조의 규정을 반대해석하는 논리를 취하면 삼성전자도 임원들의 고의나 중과실로 인해 생긴 손해가 아니라면 면책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Ⅴ. 형평의 원리

회사와 임원과의 법률관계는 권리의무의 관계인데, 권리와 의무 사이에는 형평의 원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임원들이 회사경영과 관련하여 의무만을 부담하고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인정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형평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임원이 부담하는 의무로서의 책임은 법령 또는 정관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상법 제382조 제2항에 의하면 이사와 회사간에는 위임관계이므로 민법 제681조의 규정에 의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와 상법 제382조의3의 규정에 의한 忠實義務를 부담한다. 따라서 경영자가 법령상의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에 위반하지 아니한 행위에 대해서는 면책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이 경영판단과 관련하여 생긴 결과적 손해부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면, 그 반대로 영업이익부분에 대한 배분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임원들의 미래지향적 경영판단이 결과적으로 회사에게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남긴 경우에도 임원들의 배분청구권은 법리상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세계적 우량기업이고 이처럼 우량기업을 만든 사람들이 이번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 임원들인데, 그들이 수원지법판결에서 문제된 경영판단과 관련하여 생긴 손해부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면 우리의 법감정에 맞지 않음은 물론 형평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보면 이번 수원지법판결은 승리한 전쟁에서 일정한 작전지역의 전술적 판단을 문제삼아 지휘관들을 사후적으로 문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전쟁은 전투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적 전술적 작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그 당부를 심사하는 것은 전쟁과 전투작전의 속성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결과적으로 승전이냐 패전이냐의 여부만을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번 삼성전자의 경우 결과적으로 연전연승의 대전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어떤 전술만을 문제삼는 것은 지휘관들의 사기만을 저하시킬 뿐 국가경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임원들은 고도의 위험성을 수반하는 경영판단을 가급적 피하고자 할 것이며, 그 결과 기업가정신은 위축될 수 밖에 없게 된다. 헌법 제119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는데, 기업가정신의 위축은 결과적으로 경제상의 창의를 위축시키게 되는 것이다.

Ⅵ. 맺는 말

오늘날의 시대는 국제화사회?전문화사회?기술화사회?정보화사회로 특징되고 있다. 경영판단도 시대의 변화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경쟁적이고 탄력적일 것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도의 경영마인드와 경영철학을 필요로 하는 전문적 노하우를 요구하는 것이 경영판단이다. 더욱이 국가의 공적 영역이나 사적 영역은 엄격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상호 밀접한 유기적 관련성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유기성은 1997년에 있었던 한보사태와 기아사태가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쳐 결국은 IMF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경제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게 급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분야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전문화되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에 따라 고도의 기술성?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분야도 나날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모든 분야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면 입법문화와 법조문화도 그에 상응하게 변해야 하는 데, 국회의 입법은 골격입법 내지는 개요입법으로 전락하여 행정권우위시대를 초래하였고, 법조문화 역시 고도의 기술성?전문성을 요하는 소송사건에 있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점에서 입법권과 사법권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권의 경우 먼저 변화된 현실을 직시하여야 하며,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그 전문성을 존중하는 사법적 판단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기업경영의 노하우를 가진 판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영판단의 당부를 오로지 사법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전문성을 결여하게 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은 경영판단이 지닌 위험선호적 의사결정의 의미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하며, 이와 관련하여 경제학 내지 경영학 이론을 법률학과 병행하여 법률적 판단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찬주, 전게 권두시론, 15面.. 그러므로 법적 판단은 하되, 전문성에 관한 판단은 전문가의 견해를 존중하는 사법판단을 하는 것이 시대적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전문화 시대에 있어 전문영역을 상호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에 대한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 부 록 >

12월 27일 이루어진 삼성전자의 대표소송 판결에 대해 경제계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삼성전자 대표소송 판결(1심)에 대한 경제계의 입장

모든 경영의사결정에는 항상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으며, 회사의 경영자들은 이같은 위험을 떠안고 경영판단을 행한다. 이같은 경영의사결정 과정의 違法性 여부는 법원의 심판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위험이 뒤따르는 전문적 경영판단 자체를 법원의 심판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실패한 경영판단에 대해서까지 法的 責任을 물을 경우 경영의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며, 특히 임원 개개인에 대해 고액의 배상 책임을 부과할 경우, 경영자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여 의욕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해나가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현재 의무화되어 있는 사외이사의 선임도 매우 어려울 것이며, 위험한 경영의사 결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대하거나 결정과정에 아예 참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외국의 경우 經營判斷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다(Business Judgement Rule). 이같은 원칙하에 美國의 경우 대표소송 제기시 이사회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소 제기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으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원회의 판단은 법원에 의해서도 존중되고 있다. 대표소송의 남용이 문제되고 있는 日本의 경우에도 최근 상법을 개정하여 임원의 배상책임 한도를 규정함으로써(대표이사의 경우 6년, 사내이사의 경우 4년, 사외이사의 경우 2년 보수), 경영자가 고액의 소송에 연루될 것을 우려하여 지나치게 위축된 경영을 펼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의사 결정은 항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같은 예측은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 또한 급변하는 경제환경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은 기업경영의 필요불가결의 요소가 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경영의사결정의 自律性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실패한 경영판단에 대해서까지 법원의 심판대상으로 삼는 것은 창의적이고 지속적인 기업발전에 중대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 판결을 계기로 현행 우리나라 대표소송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특히 무제한의 소송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현행 제도에 대해서는 충분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김효성의 견해

지난 연말 수원지방법원은 삼성전자(주)의 일부 소수주주가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대표소송에서 원고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경영상의 잘못으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의 전현직 이사 14인에게 총 977억 6천만원을 배상토록 한 것이다. 이번 사법부의 판결은 투명경영, 책임경영 정착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원이 배상책임을 물은 이유 중의 하나는 삼성전자 이사들이 부실기업인 이천전기공업(주)에 부당하게 출자와 지급보증을 해주었다는 데 있다. 상법상 이사는 회사로부터 사업경영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위임받고 있으므로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지고 있는데 당시 이천전기 재무상황의 부실정도가 통상범위를 넘어섰는데도 이를 지원토록 결정한 것은 선관의무(善管義務)를 해태한 것이라고 법원이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이사회에 안건이 상정되기 위해서는 실무부서부터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또한 이사회 구성멤버의 대부분이 통상 20-30년 이상 재직한 해당분야 전문가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다른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부실기업을 지원했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이들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영상의 판단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러한 결정으로부터 얻게되는 개인적 이득이나 고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사가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이 이천전기 지원을 통해 얻은 것이 없으므로 당시의 결정은 순수한 경영상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경영상의 판단이 사법심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자본주의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미국에서도 회사경영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결정은 경영진의 고유권한으로 인정되어 법적책임을 묻지 않는 원칙(Business Judgement Rule)이 확립되어 있다.

경영행위에 대해 사후처벌이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이번 판결에서 주목해야할 점이다. 삼성전자의 이사들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사실은 모두가 사후에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들이다. 이러한 사후결과를 가지고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다면 누구도 불확실하고 위험스러운 의사결정은 피하려 할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동인으로 일찍이 조지프 슘페터가 지적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크게 훼손시키는 일이다.

또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배상을 해야 한다면 탁월한 경영으로 인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었을 때도 응분의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반대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가전부문에 의존하던 삼성전자는 지난 80년대 초 처음으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였다. 당시만 해도 성공을 확신하기 어려운 매우 위험한 사업부문이었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한 과감한 결정 덕분에 삼성전자는 지난 20여년 동안 매년 수조원대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이익을 냈지만 이사들에게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 주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법원이 배상책임 사유의 하나로 판시한 삼성종합화학(주) 주식의 부당한 저가매각 또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저가매각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IMF위기 당시 많은 기업들이 보유자산을 취득가격 이하로 처분한 사실을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 아쉽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는 최상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삼전자의 경우에도 삼성종합화학 주식을 매각한 대금으로 다른데 투자를 하여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면 비록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각했다하더라도 면책이 될 수 있다.

이사의 책임여부를 하나하나의 개별사안에 의해 판단할 것이 아니라 1년 단위 또는 해당이사의 임기라는 연속선상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삼성종합화학의 주식을 매각한 시점인 94년도에 삼성전자는 2조 6천억을 상회하는 영업이익을 얻었다. 이러한 경영성과는 당시 이사진들의 경영활동과정에서 얻어진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이들에게 이사회 결의사항 하나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를 들어 거액의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사의 무한책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배상액의 규모가 너무 가혹하다는 점이다. 이번 판결로 손해배상 책임을 안게된 이사들 중 두 가지 사안에 모두 해당되는 4인은 비록 연대책임이라고는 하나 산술적으로 나누면 한 사람 당 배상규모가 무려 160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금액은 그들이 재직기간동안 받은 임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94년 당시에는 임원 배상책임보험조차 제대로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고려한다면 판결의 현실성이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firm)의 영어기원은 17세기 초 네덜란드 국왕이 항해술을 보유한 선장과 자본을 가진 상인의 결합에 대해 피르마(firma)라는 법적지위를 부여한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선장은 상인이 대준 자본을 가지고 동양과의 교역을 위해 머나먼 항해에 나서게 되고 이를 통해 얻게되는 이익을 서로 나누게 된다. 위험이 큰 만큼 이익도 커지게 되나 항해에 실패했다고 해서 선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선장과 상인간의 이 같은 역할분담은 바로 오늘날 주식회사제도의 경영자(선장)와 주주(상인)의 관계와 동일하다. 경영자는 주주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하나 여기에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 선장에게 항해전권을 부여함으로써 바다를 지배했던 네덜란드의 영화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떠올리면서 이사회의 고유권한인 경영판단에 대한 이번 판결이 경영위축과 기업의욕 감퇴를 불러오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출처 - 한국법제개혁연구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