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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뢰'가 국력이고 웰빙이다 - 이훈구
	2004-11-25
'신뢰'가 국력이고 웰빙이다 한 나라의 국력(國力)은 다각도로 측정할 수 있다. 경제력은 국내총생산(GDP)이나 국민총생산(GNP)으로 나타낸다. 국민후생지표(GNW·Gross National Wellbeing) 역시 국력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국민의 사회적 안녕 수준을 뜻한다. 사회적 안녕은 여러 가지로 조사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민의 삶의 만족도, 사회 불안, 그리고 신뢰이다. 국민이 삶에 만족하고 사회불안을 적게 느끼며 서로 신뢰하는 사회는 그만큼 GNW가 높다. GNW가 높으면 우리는 그만큼 행복하고 편안하다. 유명한 사회심리학자인 야마기시는 사회가 불안할수록 그만큼 그 사회의 신뢰수준은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GNW의 가장 주요한 요소가 바로 신뢰이다. 최근 사회학자들은 신뢰를 사회의 필수적 자본으로 간주하고 이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할수록 그에 따른 불필요한 경비를 삭감할 수 있기 때문에 신뢰는 경제 성장, 사회 발전을 촉진시킨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회사에 취업하면 회사는 우리에게 신원보증서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 증명서를 떼려면 돈을 줘야 한다. 나는 지난 4월 한국인의 신뢰 수준에 관한 조사를 했다. 우리 사회의 여섯 가지 계층에 대한 신뢰를 13개 문항을 통해 측정했다. 그 결과를 보면 사회고위층에 대한 불신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이 정치인, 기업인, 특정 서민, 일반인, 그리고 전문가, 법원에 대한 순서로 나타났다. 왜 이러한 불신 풍조가 만연하는가? 그것은 한국의 고위층일수록 거짓말을 밥 먹듯 하기 때문이다. 정계에서 영원히 떠날 것이라고 굳게 성명서를 발표하고도 선거 때가 되면 슬그머니 출마한다.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분명히 뇌물성 상납을 주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자금이었다고 시치미를 뗀다. 그리고 불기소 처분으로 방면된다. 이 조사 때 특정서민, 즉 학생에 관한 신뢰도도 측정했는데 이런 항목이 있었다. “커닝을 하다 들킬 염려가 없을 때라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커닝을 하지 않을 것이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60.2%가 이 문항에 ‘부정한다’고 답한 반면 찬성률은 11.6%이며, 부정도 긍정도 아닌 사람이 28.2%이다. 즉, 한국 사회란 순수해야 할 대학생들조차도 믿지 않은 사회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조사 응답자 가운데는 대학생집단이 있었는데, 그들의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 수준이 전체 응답자 집단 중에서 제일 낮았다는 사실이다. 즉, 5점 척도로 측정한 신뢰수준에서 학생집단의 신뢰점수가 2.21점(낮으면 낮을수록 신뢰하지 않음)으로 가장 낮았다. 학생들이 다른 어느 응답자 집단보다 우리 사회를 강하게 불신하고 있는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학생 사회에서 커닝이 만연하고, 수능부정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정부패가 제일 많은 나라라고 일찍부터 알려져 왔다. 이웃 일본조차도 한국인을 그렇게 보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그동안 거짓말, 부정에 대해 너무 소홀히 해왔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는 사회 발전도 없지만 그만큼 국민은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 서로 신뢰하는 사회는 그만큼 즐겁고 편안하다. 내가 미국서 공부할 때, 각종 공연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입장료를 할인해 주었다. 그런데 나이 많은 내가 학생이라고 말해도 아무도 학생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만큼 서로를 믿는 것이다. 남이 나를 믿으니 나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법을 지킨다. 한국은 현재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국의 신뢰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부정·허위·불법·탈법을 척결하는 데 발벗고 나서야 한다. 이훈구 (연세대 사회심리학 교수 / 시민회의 일하는복지사회운동본부장) 출처 - 문화일보 2004. 11.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