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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선의 정치’ 멈추어라 - 류동길
	2004-11-02
‘독선의 정치’ 멈추어라 수도이전 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두고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 헌재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인데 이의 수용 여부를 따지는 세상이다. 불만이 있다고 해서 수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헌법재판소 무용론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이름이 꽤 알려진 김용옥 교수는 헌재 재판관들을 ‘갑신칠적(甲申七賊)’이라면서 ‘관습헌법이라는 법률학사전에도 없는 말을 지어내 바보짓을 했다’는 극언까지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헌재 결정에 대해 ‘헌정질서 혼란 우려’라는 표현을 했고 충청권에 행정도시 건설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낸 셈이다. 여권에서는 ‘헌재 탄핵’ 주장도 하고 헌법재판소법 개정론도 나온다. 헌재 보복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헌재 재판관들은 법에 따라 결정을 했는데 이를 시비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헌재는 정권에 유리한 판정만 하라는 주문이고 “나의 뜻과 다른 결정은 부정돼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헌재가 대통령을 탄핵소추에서 구해 주었을 때에는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고 했다. 헌재 결정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헌재 재판관을 인신 공격하고 탄핵하겠다는 것은 극에 달한 후안무치(厚顔無恥)요, 법치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폭거다. 과거 독재·권위주의 시대에는 기존의 제도나 법질서를 부정하거나 도전하는 것은 용기요 양심으로 치부됐다. 개혁을 하겠다는 세력이 지금도 법이야 어떻든 투쟁해서 돌파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시대착오적이자 오만이고 독선이고 아집이다. 대통령은 헌재를 믿고, 국회 결의를 믿다가 어려움에 빠졌다고 했지만 수도이전 문제가 제기되고 추진된 과정을 한번 되돌아보자. 많은 국민들은 수도이전은 정략적으로 제기됐고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아 반대했다. 결코 대통령과 정권에 반대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찬성하면 내편, 반대하면 네 편으로 가른 것은 대통령과 여권이었다. 충청 지역 주민의 울분을 왜 모르겠는가. 그들의 허탈감과 상실감을 메울 대책을 찾아야 한다. 충청 지역이 아닌 다른 낙후된 지역은 할 말이 없어서 조용히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비(非)충청권에 대한 배려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쨌든 대책과 대응은 모두 정부의 몫이다. 수도이전의 대안을 찾겠다는 논의도 많지만, 대안은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에 제대로 힘을 쏟는 것이다.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을 누가 마다하는가? 수도권이 과밀화되고 지역 균형 발전이 잘 안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수도이전은 하나의 수단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게 목표가 돼 버렸다. 수도만 이전하면 지방이 발전할 수 있다는 억지 논리를 내세웠다. 모르고 했다면 무식하고 알면서 했다면 속임수다. 수도이전은 결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헌재의 결정을 피해 가기 위해 행정도시를 건설하려 한다. 이는 포장을 바꾼 ‘변형된 형태의 수도이전’이나 다름없다. 헌재 결정은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수도이전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정략적 발상을 하고 있다. 할 일이 그리도 없는가. 통일에 대비하는 모습은 간데없다. 경기는 본격적인 하강 국면에 진입하고 있고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데 수도이전을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야단이다. 민생 경제를 살려 달라는 국민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장사가 안 되는 음식점 주인들이 솥뚜껑 들고 데모하겠다는 판이다. 희망의 정치를 펴라. 경제가 어렵더라도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라. 지금 힘들더라도 노력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국민들이 믿을 수 있게 하라. 해야 할 일 제쳐두고 하지 않아야 할 일에 국력을 소모하고 갈등을 부추길 까닭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1. 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