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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감시 더 강화하라 - 박효종
	2004-11-01
권력감시 더 강화하라 문화일보가 오늘로 창간 13주년을 맞았다. 짧은 기간에 책임있는 신문으로 우뚝 성장한 문화일보가 앞으로 더욱더 커다란 성취를 이루기를 기원한다. 이 시점에서 축하의 인사를 하면서도 새삼스럽게 언론의 정도(正道)와 사명을 일깨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만큼 한국의 정치상황이 각박하고 또 천박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위상은 독특하다. 언론은 ‘유권자의 선택’보다 ‘독자의 선택’에 의해 운영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권력을 감시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권력을 감시함으로써 독자에게 봉사하는 것은 언론의 천형(天刑)과 같은 것이다. 그 천형은 아틀라스가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과 비교될 수 있는 형태의 고통일 것이다. 아틀라스가 떠받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언론이 민주주의를 떠받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무너지기 때문에 안간힘을 다해 권력을 감시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언론은 ‘거울’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왜곡되지 않은 거울, 사물을 분칠하거나 덧칠하지 않고 그대로 투사해주는 거울, 현실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정직하게 보여주는 거울이야말로 신문의 자화상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태산처럼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며, 또 비둘기처럼 온유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유혹도 많고 위협도 많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신문이 거울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환경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권력을 감시하고 ‘정부의 실패’를 지적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인데, 지금은 ‘신문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겠다며 개입하는 정부에 의해 감시를 당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언론과 여론의 시장이 상품시장과 같은 것일까? 만일 정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치 고래를 물고기로 분류하는 것처럼 잘못된 분류가 아닐까? 지금의 정치 상황을 보노라면, 정체성을 잃은 정치의 실체를 보는 것 같다. 아무리 ‘포스트모던’ 정치라지만, 정도도 없고 원칙도 없다. 또, 옳고 그름도 없고 겸양도 없으며 예의도 없고 배려도 없다. 오직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전략적 사고만이 배회할 뿐이다. 그러니 통합과 절충, 협상이 있어야 할 곳에 적개심과 복수심만이 살아 숨쉬고 있지 않은가. 파행 국회야말로 ‘천하디 천한 정치’의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거짓말정치’가 유행한다고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된 게 엊그제인데, 지금은 ‘막말정치’가 유행하고 있다. 아무래도 시민단체들이 ‘고운말 쓰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합리적 토론을 내세우며 설득을 위주로 하는 정치를 하겠다던 집권세력의 포부는 어디 갔는가? 원래부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정부 각료들끼리 오순도순 앉아서 난상토론을 하면 설득의 정치가 되는가? 토론이란 의견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 정도이다. 오히려 야당과 마주앉아 합리적 토론을 벌여야 토론 민주주의가 될 터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방식으로 정치를 접근하는 태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만 있지,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금도가 없는 우리 정치에 새삼 자조감이 든다. 이럴수록 언론의 사명이 기대된다. 그 사명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말을 하는 데 있다. 실제로 문화일보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신문, 오피니언 리더의 열독률이 높은 신문으로 성장한 것이다. 많은 것들이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있고 또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으며, ‘국정을 책임진 존재의 무거움’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절감하는 이 현실에서 문화일보만이라도 하루에 세 번씩 언론의 사명을 되새기며 옷깃을 가누기를 당부한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4. 11.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