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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시정책 분권화가 필요하다 - 권대봉
	2004-10-26
입시정책 분권화가 필요하다 지금 중3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 발표가 당·정협의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 연기되고 있다. 연기의 속사정은 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등 대입 3불(不) 정책을 고수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지만, 수능 등급에 관하여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능 1등급을 수험생의 4%로 하자는 교육부 안과 7% 이상으로 대폭 늘리자는 다른 안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한다. 대입 3불정책은 김영삼정부의 마지막 교육부 장관이, 정권이 거의 끝날 무렵에 여론수렴 절차도 없이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서 만든 것인데, 김대중정부가 계승했고, 현 정부의 교육부총리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유보하는 본고사 금지 조항이다. 수능 1등급 수험생의 경우, 본고사를 금지한 현행 입시제도 아래에서 논술고사와 구술고사가 당락을 가르기 때문에 본인의 다른 실력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글솜씨와 말솜씨가 입학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수능 1등급이 교육부 원안대로 4%가 되건, 다른 주장대로 7%가 되건 간에 등급으로 된 수능성적과 내신성적이 개인별 변별력이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7%가 되면 등급별 평준화 효과가 4%보다 상대적으로 커져 형평성이 좀 더 제고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 것 같다. 내신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형평성과 수월성의 문제를 학생들의 글솜씨와 말솜씨에 의존하여 해결하려는 입시정책은 위험하다. 글솜씨를 판별하는 논술고사 준비와 말솜씨를 판별하는 면접고사 준비가 공교육에서는 부실하고 사교육에서 맹위를 떨치기 때문에 이 정책은 오히려 형평성을 저하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 국공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의 입시정책까지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러니 중앙정부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와 각 대학들에 덜어줄 짐이 무엇인지 가려내어 넘기는 분권정책을 써야 중앙정부가 과부하에서 벗어나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사립대학에 대해서는 학생선발권을 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와세다(早稻田)대학이나 게이오(慶應)대학에서는 세 가지 방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즉, 부속고등학교 출신의 동일 학교 계열 무시험 입학으로, 대학이 선정한 고등학교들의 고교장 추천 학생으로, 대학 자체 입학시험으로 선발하고 있는 것이다. 초·중등 시절에 대학 입학이 보장돼 전인교육을 받은 부속고등학교 출신들 가운데서 훌륭한 졸업생이 더 많은 것은 사립대학에 선발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이 인류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국립대학이 없고 주립대학과 사립대학이 있다. 주립대학의 경우, 해당 주 학생을 일정 비율 이상 입학시켜야 한다는 조건과 일정 성적 이상의 학생들을 입학시켜야 한다는 조건 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학생 선발에 주정부가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립대학의 학생선발권은 전적으로 대학에 있다. 한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이나 미국대학시험(ACT)은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기구에서 관장하고 있다. 주립대학이든 사립대학이든 정부가 수능이나 입시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처럼 수능이나 입시 때문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일도 없다. 수능시험 때문에 정권이 부담을 안고 가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수능을 자격고사화하여 교육의 질관리를 하고, 대학에 선발자율권을 주면 대학입시 때문에 정권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진다. 정권이 부담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형평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입시정책은 분권화이다. 모든 대학에 동일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라, 국립대는 중앙정부가, 공립대는 지방정부가, 사립대는 대학이 각각 입시방안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분권정책이 필요하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10. 2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