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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력있는 대학’ 키워야 한다 - 유민봉
	2004-10-25
‘경쟁력있는 대학’ 키워야 한다 고교등급제 내지 대학의 선발자율권 등에 대한 찬반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교육의 평등주의냐 엘리트주의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교육제도는 두 이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듯하다. 그 핵심은 교육에서 질과 양의 양쪽을 지배하는 대학이 없다는 것이다. 하버드를 포함한 유명 사립대학은 분명히 질적으로 세계 최고로 우수한 학생을 데려간다. 그렇지만 양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2004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대학평가에서 공대 중심의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칼텍을 제외한 상위 7개 대학의 1학년 학생 수를 보자. 하버드 1635명, 프린스턴 1176명, 예일 1353명, 펜실베이니아 2423명, 듀크 1642명, 스탠퍼드 1640명, 컬럼비아 1011명 등이다. 한편 20위부터 순위에 오른 주립대학의 경우 상위 5개 대학의 1학년 등록생 수가 2만명, 학교당 평균 4000명 규모이다. 사립대학과 주립대학 간에 엘리트교육과 평등교육의 기능을 적절히 분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립대학은 학생 수가 많다 보니 그 중의 일부가 사립대학의 정예들과 비교하여 경쟁력을 갖는다. 명문 사립은 탁월한 인재를 취하지만 양을 포기한다. 이렇게 하여 몇 개 대학이 사회를 지배할 수 없는 공정한 경쟁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것은 법대나 의대의 전문대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포항공대와 과학기술대를 제외하고 사회통념상 상위 5개 대학의 학생이 1만9000여명으로 1개교 평균이 3800명 정도이고, 4년제 대학 전체 정원의 5%가 넘는다. 미국의 주립대학 규모이고 상위 12위까지의 학생 수보다 많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법 및 행정 고시에서 이들 대학의 합격률을 보면 더욱 놀랍다. 5개 대학에서 매년 사시 합격자의 70% 내외, 행시 합격자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의대 정원도 450명이 넘는다. 전국 대학에서의 교수 점유율 또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어디를 가도 이들 주요 대학 출신들이 수와 실력 양면에서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비교는 고등학교에도 적용된다. 미국 사립고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필립스 앤도버의 한 학년 학생 수가 270명 정도다. 2004년도에 이 가운데 17명이 하버드대에 입학했고 동부 명문 아이비에 진학한 학생은 30% 정도다. 당연히 각 대학에서 앤도버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한국의 대원외고를 보자. 입학정원 420명. 이 중 재수생을 포함하여 2004년도에 90% 이상이 서울대, 연·고대, 이화여대에 진학했다. 연·고대의 경우 입학정원의 3%를 넘는다. 그동안 한국 교육에서 간과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몇 개 학교가 ‘양질의 많은 학생’을 독식하면서 공정한 경쟁이 왜곡된 것이다. 몇 개 대학의 입시 제도에 나라가 흔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결의 열쇠는 숫자에 있는지 모른다. 포항공대·과학기술대, 민족사관고·과학고가 입시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명문 대학의 학생 수를 지금의 반으로 줄이고 그 정도 규모의 명문 대학이 더 늘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명문은 주요 시험의 합격자 수로 승부했고 그것이 학교의 프리미엄으로 개인에게 평생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것은 학교 경쟁력은 될지라도 개인이나 국가경쟁력은 되지 못한다. 명문일수록 무엇이 진정 나라를 경쟁력 있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질은 취하되 양은 포기해야 한다. 그 방향이 옳다면 방법론을 생각할 때다. 적어도 이들 명문은 등록금을 현실화하되 장학금 지급을 성적이 아니라 재정부담 능력으로 할 필요가 있다. 무한 국가경쟁력 시대에 엘리트교육을 포기할 수 없고 민주 복지국가에서 평등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 숫자가 이 난제를 풀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유민봉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교수 / 시민회의 바른행정본부장) 출처 - 문화일보 2004. 10.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