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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위 ‘과징금 부과’ 신중해야 - 조동근
	2004-09-08
	한국판 뉴딜 비판.pdf
공정위 ‘과징금 부과’ 신중해야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는 소년의 거짓말에 마을 사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뛰어나간다. 거짓말에 속는 것은 판단오류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오류의 비용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소년의 외침을 묵살하는 판단오류는 치명적이다. 소년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치명적인 판단오류를 피하기 위해 속아 준다. 헌법상의 ‘무죄추정 원칙’도 이같은 ‘치명적 오류’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 권력기관으로서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는 데 보수적이고 과학적인 판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제기된 행정소송의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공정위가 패소한 비율이 5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패소율 56%는 피했어야 할 치명적 오류를 그만큼 범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고등법원에서 패소했다가 상고한 사건이 한꺼번에 대법원 판결을 받으면서 일시적으로 패소율이 높아진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3년간 공정위의 과징금 소송 패소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진 만큼 이같은 해명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비율도 2001년의 32.9%에서 지난해에는 43.2%로 급증했다. 이쯤 되면, 경제검찰로서의 공정위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셈이다. 공정위의 패소율이 50%를 넘고 과징금 부과에 대한 기업의 불복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공정거래법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불공정거래 행위는 “공시 위반, 가격 담합, 부당 내부거래”이다. 그 중 공시 위반에 따른 과징금 부과에 대해 기업이 이의를 제기할 소지는 거의 없지만, 가격 담합과 부당 내부거래는 사정이 다르다. 그만큼 세심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정위는 부당 내부거래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온 경향이 있다. 공정거래법의 위법행위 구성요건이 ‘현저하게’ ‘상당한’ 식으로 모호하게 돼 있어 그 판정 기준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공정위의 계열사간 내부거래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과징금 부과를 남용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공정위는 내부거래에 따른 효율 증진 효과와 부당 지원을 통한 경쟁제한 효과를 ‘합리의 원칙’에 따라 비교 형량(衡量)하여 부당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할 경우 과징금이 부과될 만한 부당 내부거래는 그리 많지 않게 된다. 구체적으로, 공정위가 A계열사의 B계열사 어음 매입을 부당 내부거래로 판정하고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법원은 당시의 매입 금리가 정상금리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부당 지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기업들이 같이 가격을 올리는 것을 담합으로 예단하는 것도 판정오류를 범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공정위는 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료 담합 과징금 부과에 대해 패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보험료 인상은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에 의해 이뤄진 것이므로 담합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위법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조사권한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기관의 권한강화가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공정위의 패소는 공정위의 신뢰만 추락시키는 것이 아니다. 과징금을 부과당한 기업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잃고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쉽게 명예가 회복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공정위가 규제기관으로서 신뢰를 회복하려면 위법행위에 대해 정당한 근거에 기초해 적정하게 과징금을 산정, 부과할 수 있도록 과징금 산정과 부과 과정의 명확성·일관성·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센터 소장) 출처 - 문화일보 2004. 9. 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