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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과 희망을 잃어가는 나라? - 박효종
	2004-07-29
	성명서(북한한국공무원사살만행)2020.9.26.pdf
돈과 희망을 잃어가는 나라? 개인 재산의 해외유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유학이나 연수·여행·이민 등으로 ‘합법적으로’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작년보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밖에도 편법이나 불법으로 유출되는 해외송금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상당히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자금유출이 늘다 보니 해외에서 갖가지 기이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의 부동산 값이 급등하고 최근에는 홍콩, 중국, 베트남 등으로 한국 돈이 몰리면서 투기바람이 거세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제화시대에 자금이동 자체를 가지고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현상을 가지고 ‘부의 해외유출’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중상주의자’나 ‘국수주의자’의 성급한 기우일 수도 있다. 이미 한국사회는 경제자유화와 개방정책을 시행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가. 또 나간 돈이라도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되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돈 흐름의 성격이다. 돈에 국적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왜 한국사람의 돈이 한국을 떠나려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사람마다 고유한 개인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에 따라 행복추구의 이유가 여러 가지인 것처럼 자금운용계획도 천태만상일 터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개인들의 선택이 하나의 가시적인 추세를 이루고 있다면, 그 공통분모는 과연 무엇일까. 교육시스템의 효율이 부실하고 비용은 높은 고비용 교육구조 때문일까. 그 문제라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크기 때문일까. 역시 한국의 정치가 ‘혐오상품’처럼 된 것도 오래된 일이다. 여야 지도부가 상생의 정치를 약속하면 무얼 하나.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하고 국민 앞에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직무상 배임행위로서 가짜 상품을 파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국민들로서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처럼 하염없이 ‘새로운 정치’를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인가. 물론 이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하루아침에 아파트 재산세를 몇배로 올려놓고도 불만을 토로하는 소유주들에게 그동안 가치가 저평가된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강변하는 상황이니, 정부 관료들의 강심장도 이만하면 더 말할 것 없다. 이 모든 것들이 나름대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딱히 주된 이유라고 하기는 어렵다. 혹시 한국사회에 정이 떨어져서가 아닐까. 우리가 정작 우려해야 하는 것은 ‘돈’이 떠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옛말에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고 했는데, 지금의 세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희망은 미래에 관한 기대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고, 따라서 가꾸어 나가지 않으면 절망의 상태가 된다. 우리는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미래를 가꿀 생각을 하지 않고 과거사 논쟁이 한창이다. 의문사진상위원회가 하는 일도, 친일파 조사도 과거의 일을 파헤치는 일 그 이상이나 그 이하도 아니다. ‘역사바로세우기’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신판 ‘역사바로세우기’가 시작된 것일까. 과거를 정리하는 일에만 매달리면 어떻게 미래의 꿈을 가꿀 수 있단 말인가. 한국사회가 ‘돈’만을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잃고 ‘희망’도 잃는 것이라면 위기상황이다. 위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시름에 겨운 마음’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사람들의 몸에서 자라나는 암처럼 자각증상이 없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온몸에 암이 퍼졌을 경우처럼 늦었을 때다. 혹시 우리공동체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출처 - 세계일보 2004. 7. 2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