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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정치종속` 안된다 - 제성호
2002-07-02
안보 `정치종속` 안된다 북한은 “이제 축제는 끝났다”는 듯이 한국에서의 월드컵경기 마지막 날을 택해 제2의 서해교전을 감행했다. 남북관계가 당국간 대화 중단상태에 있고 미국이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 재개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북한이 일으킨 군사도발의 정확한 의도를 가늠키는 어렵지만, 아마도 군사·외교·정치적 동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의 해상 무력도발은 유엔군사령부가 1953년 8월에 선포한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지난 99년 6월의 연평해전 이후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설정, ‘서해 5도 통항 질서’ 발표 등 NLL을 부정하는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금 북한이 군사회담의 전제조건으로 NLL 폐지를 거론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NLL 제거를 통해 영토관할권 확대 등 실리뿐만 아니라 서해상에서의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것으로 북한 지도부는 믿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군사행동 이면에는 대미 평화협정 체결의 명분을 축적하면서, 북·미대화의 협상카드를 개발하려는 측면도 있다. 현재 미국은 핵·미사일·재래식 무기 문제와 같은 기존의 북·미간 협상의제에다 탈북자문제 등 인권문제와 테러문제를 추가,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도발은 NLL문제의 의제화를 통해 미국의 강경한 협상전술에 대한 맞불놓기 또는 유리한 대미 협상고지 확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상황전개에 따라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양국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여건조성 미비를 이유로 북·미회담 거부를 위한 구실로 이용할 수도 있다. 아울러 북한은 이번 사건을 최근 식량난 심화, 탈북자 증가 등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는 동시에, 내부단속을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남한의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대북 유화정책을 계속해서 강요하려는 고도의 대남 심리전일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북한이 작년에 여러 차례 제주해협 영해를 마음대로 드나들고 NLL을 침범한 데 이어 금년에만 무려 14차례나 NLL을 무단 월선했는데도 우리 정부가 ‘안보우선의 원칙’ 아래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유엔사 교전규칙에 따른 정당한 해상 교전권 행사를 최고통치권자가 빼앗아갔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김대중정부는 햇볕정책의 기조로 안보와 화해·협력의 병행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대북정책 추진과정에서 화해·협력에 치중, 안보가 약화되는 듯한 모습을 드러냈던 때가 적지 않았다. 주적론 폐기나 국가보안법 철폐 논의에 따른 대북 안보불감증 확산은 그 단적인 예들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흐트러진 안보태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안보문제의 정치종속화는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NLL을 유지하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현재 다단계화돼 있는 방어용 해상 교전규칙을 수정, 책임있는 지휘관의 판단만으로도 즉각적인 무력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군사적 도발행위로는 북한이 기대하는 외교적·경제적 실리를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점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빠른 시일 안에 군사정전위원회나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열어 북한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 진상 규명을 통해 북한 최고위 당국자의 시인, 사과 및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보장을 받아내야 한다. 지금 북한이 ‘NLL 폐기 없는 군사회담 거부’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이같은 북한측 태도의 부당성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 그런 한편, 북한의 대화 호응을 유도하기 위한 주변국의 대북 압력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NLL 대체 문제는 남북불가침합의서의 틀 안에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가 긴장 완화 및 신뢰 구축 차원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 금강산 관광사업을 전면 중단하는 데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남북민간교류를 위축시키고 남북관계 전반을 극도로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북한과 대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위기관리 및 화해·협력 분위기 유지 차원에서 대화하고 교류할 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2. 7. 2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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