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권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로운 인격의 발현을 위한 중요한 기본권이면서, 자유로운 의견의 교환과 여론의 형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본권이기도 하다. 그런데 표현행위는 상대방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수도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인격권이나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해 기본권의 충돌을 야기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와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것을 조절하고 실제적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입법자의 몫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필요한 경우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함으로써, 입법자는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해야 하는 과제를 갖는다. 이와 함께 헌법 제21조 제4항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발생한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규정함으로써 법률유보의 지침을 제공한다.

표현행위로 인한 명예훼손 등에 대해 실정법은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을 묻는다. 형법은 명예훼손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민법에 따라 명예훼손을 통해 인격권을 침해한다면 불법행위를 구성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그런데 언론보도에서는 진실성과 공공성이 인정되면 위법성이 조각되어 면책이 인정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미디어매체가 다양하게 늘어났다. 더구나 인터넷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구축되면서, 정보의 유통은 과거와 달리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된다. 그래서 과거보다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은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 이렇게 오늘날 언론환경이 변화하면서 이에 적합한 언론책임제도가 필요하게 됐다.

오늘날 언론은 국가권력에 뒤이어 거대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매스미디어는 강력한 힘으로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에 대한 구제는 쉽지 않다. 언론을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위축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언론의 자유만 존중하면 개인의 인격권이나 사생활의 보호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양자의 조화로운 보장이 필요하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은 충돌하는 헌법적 이익을 조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정정보도청구권, 반론보도청구권 등 반론권제도를 명문화하고 있다. 반론권은 생각보다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은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을 인식해 검열제도를 폐지했다. 언론에 대한 검열이 폐지되자, 이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로 인한 개인의 인격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됐다.

반론권은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언론보도의 부작용에 대처하기 위해 도입됐다. 언론에 의해 인격권이 침해되면 영국과 미국은 가중된 손해배상책임을 물었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반론권제도를 채택했다. 프랑스는 사실주장과 가치판단적 발언에 대해 반론권을 허용하는데, 독일은 사실주장에 대해서만 반론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반론권도 독일 제도를 답습해 사실주장에 대해서만 반론권을 인정하고 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출처- 천지일보 2021. 11.25[칼럼]
<원문>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927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