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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답방, 서둘 일 아니다 - 제성호
2004-07-20
[자료집]리쇼어링과 ‘유턴기업 지원법'.pdf
김정일 답방, 서둘 일 아니다 여권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여권은 답방의 의미와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인식 하에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치겠다고 한다. 야당과 협의해 초당적 협력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뜻도 내비치고 있다. 이와 관련, 벌써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이 정상회담 여건조성을 위해 파견될 대북 특사로 거론되고 있고,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역할론도 제기되고 있다. 대북송금 특검 등 1차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후유증을 생각할 때 초당적 협력도 좋고 공개적 추진도 좋다. 하지만 여권의 상황인식과 때 이른 행보를 보면, 정치권의 남북정상회담 병, 남북관계 조급증이 또 다시 도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민족화해와 남북협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면, 그런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여건이 무르익어야 하고, 남과 북이 회담을 통해 주고받을 것이 확실해야 한다. 지금 이런 요건들이 충족돼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북핵문제의 가시적인 진전이 없다.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정치적 쇼’에 그칠 공산이 크다. 혹자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우리의 일방적 희망이요,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환상에 불과하다. 북한은 이른바 ‘조선반도의 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과 직접 상대하려 하고 있다. 김정일은 핵을 고리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중단, 북한체제의 안전보장,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한미동맹관계 해체, 북미수교 정상화 등을 얻어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상당 수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행정수도 이전문제, 주한미군 재배치와 이 과정에서 불거질 안보불안 해소문제, 외환위기 때 못지않은 경제침체와 청년실업 타개문제, 이라크 추가파병문제, 날로 증가하는 우리 국민에 대한 테러위협 대책 마련과 신변안전 확보문제, 보혁 및 계층간 갈등 완화문제 등등. 어느 것 하나 간단한 문제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김정일의 답방이 국정과제 중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정상회담 카드를 추락한 참여정부의 국민 지지도를 만회하거나 정치적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하려 해선 안된다. 김정일 답방 등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의도와 구체적인 입장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북한이 정상회담을 통해 민족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한미관계의 틈을 더욱 벌리려 한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특히 해방 60돐이 되는 2005년을 통일원년으로 삼기 위해 북한이 ‘낮은 단계 연방제’ 협상을 요구해 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만반의 대비가 없이는 북한이 펴놓은 돗자리에서 춤추는 꼴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 국민들도 김정일 답방에 충분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아직은 대다수 국민들이 길거리에 나가 인공기를 흔들며 김정일을 환영할 분위기가 아니다. 625전쟁이나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정치적 사과문제도 여전히 시비거리로 남아 있다. 따라서 정부와 여권은 남북 정상간의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거나 2차 정상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해선 안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그간 정부가 여러 차례 공언한 것처럼 북핵문제가 해결된 다음, 또 국내적으로 산적한 현안들을 상당부분 마무리 지운 후 차분하게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의 복잡한 정국구도 하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남북장관급회담을 지속적으로 개최함으로써 다방면의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2차 국방장관회담 등을 통해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조치를 협의실천해 나가는 것이 더욱 현명한 대북정책이라고 하겠다.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개선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김정일 답방은 필요하고도 가능한 때 국민적 성원을 받는 방법으로 추진하되, 한반도 평화 증진과 분단고통 완화(국군포로납북자문제 해결 등)를 이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주간조선 2004. 7. 15일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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