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친일(親日) 조사의 정략적 이용 위험 - 한영탁
	2004-07-19
	[자료집]대담한계획_양준모.pdf
친일(親日) 조사의 정략적 이용 위험 집권당이 ‘일제(日帝) 강점하(强占下)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의 개정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입법된 특별법의 시행을 두 달 앞두고 나온 이 개정안은 어쩐지 처음부터 정략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주요 조사 대상으로 중좌(중령)급 이상의 군인 장교를 소위급 이상의 장교로 확대한 것이 정략적인 냄새를 짙게 해준다. 그냥 중앙 문화 기관, 단체가 일제에 협력한 행위를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언론, 문화, 예술, 학술, 교육, 종교 등 사회 전반 분야 친일 행위로 넓힌 점도 그렇다. 일군 중위였던 고 박정희 대통령과 일제 때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겨냥한 개정입법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다. 열우당 신기남 당의장은 이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자리에서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과거 친일 행적을 보인 몇몇 언론사주 문제는 개정안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면서 “정략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나오기 바쁘게 때를 만난 듯 친노(親盧) 진영 인터넷 사이트를 들끓게 만들고 있는 네티즌들의 글은 “정략적 의도가 없다”는 신의장의 말을 무색케 하고 있다. “박정희는 독립군과 싸우던 일본군의 장교였고, 명백한 친일파이다”는 글도 있고 “이제 조, 중, 동은 끝났다.”고 쾌재를 부르는 소리도 눈을 끈다. 친일은 분명한 반민족적 행위였고 단죄되었어야 마땅했다. 광복 후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48년 9월에 악질적인 친일행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곧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반민특별검찰위원회, 반민특별재판위원회 등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비협조로 반민특위법이 51년 2월에 유야무야로 폐기되는 바람에 악질 친일파 처벌은 물거품이 되었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민족정기를 확립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때늦었지만 친일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적 교훈으로 삼으려는 노력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2차대전 후의 극심한 냉전 시대와 북한의 남침 전쟁을 거치면서도 경이적인 경제를 이룩해온 어려운 과정에 대한 깊은 역사적인 성찰을 떠나서 반세기가 지나서 새삼스럽게 친일논의가 불거져 나나오는 건 무엇인가 석연찮은 느낌이 있다. 비록 단죄 기회를 놓쳤지만, 친일 진상은 광범위하게 밝혀져 왔고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때 지난 친일논의가 본질을 떠나 어느 정파의 정략적 목적을 위해서 악용될 수 있는 위험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개정안이 조사대상으로 확대한 일제하 언론기관에는 조선, 동아일보가 손꼽힌다. 두 신문은 3.1독립운동 1년 뒤 일제가 조선 식민지인들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마련한 조선총독부의 이른바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창간을 허용 받았다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8월에 강제 폐간되었다. 그 20년간 총독부의 악랄한 통제와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두 신문은 생존을 위해서 겉으로 일제 통치에 부응, 동조하는 치욕적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숫한 수난과 굴욕을 참으면서 제약 속에서도 부단히 민족적 자주와 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민족 언론으로서의 피나는 노력을 해왔고 용기를 보여 주었다. 조선일보는 창간 반년이 못되어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에 대한 기사와 서울을 방문한 미국 의원단을 환영하는 민중을 폭력으로 저지한 일제를 규탄한 사설로 정간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정간이 풀려 다시 신문을 내는 날 ‘우열(愚劣)한 조선총독부 당국자는 하고(何故)로 우리 신문에 정간을 명하였나뇨’란 대담한 제목으로 총독부를 통렬히 질타하는 사설을 내놓음으로써 다시 무기정간을 당하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동아일보는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을 보도하면서 일장기 말살 사건을 빚어 정간의 곤욕을 치렀다. 일제하 두 신문이 압수, 정간을 당하고 사주와 편집인, 기자들이 체포, 투옥된 경우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비일비재했다. 두 신문은 관영(官營) 신문만 남는 언론 암흑시대보다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지만 민족지를 지키는 게 낫다는 신념으로 광란적인 군국주의 일제의 철권통치에 겉으로 타협하면서도 신문을 지키는 생존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그런 일제하 민족지들의 타협적 측면만을 친일행위로 부각시켜 단죄하겠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더구나 그것이 현 정부에 비판적인 조선, 동아 죽이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용된다면 큰 역사의 진실을 외곬으로 왜곡시키는 어리석은 결과가 될 것이다. 광란적인 독제체제에서 신문이 살아남기 위해서 체제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는 가까운 일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권위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아사히신문(朝日新聞)도 태평양전쟁 말기, 군국주의 정권의 비위에 맞춰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진군나팔을 불어댔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황군(皇軍)이 미. 영 귀축(鬼畜)을 무찌르고 있다”고 도오조 히데끼(동東條英機) 내각에 영합하여 부화뇌동(附和雷同)까지 했다. 그러나 미드웨이해전(海戰)과 콰달카날 전투에서 일본 해군이 전멸되자, 도오조가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에 맞서 대나무창[竹槍]을 만들어 항전하라고 국민들에게 촉구했을 때, 그건 어림도 없는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지적하는 사설을 실었다. 바로 다음날 아사히신문은 폐간 당했다. 신문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릴 수 있는 독재 권력 앞에서 신문의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식민 통치하 민족지의 힘겨운 생존 방식에 대한 이해와 민족지의 그보다 더 큰 공헌을 도외시하고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했던 친일 사례만 크게 부각시켜 현재의 메이저 언론을 죽이려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또한 일본군 장교를 지낸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분별하게 친일반민족 혐의자로 몰아가는 것도 곤란하다. 그들 가운데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식민지 청년으로 생업을 위해서 군대를 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전투에 투입되는 시기를 늦추기 위한 수단으로 간부후보생을 지망하여 임관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광복 후 한국군을 창군할 때 장교로 임관된 사람들 가운데는 일군 출신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해서 그들이 북한 공산군의 남침에 맞서 싸운 주역이었다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행려라도 초급 장교까지를 망라한 친일 시비가 한국군이 쌓아온 공적과 위상을 파괴하려는 기도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한국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부정하고 뒤흔들어 놓는 무서운 음모라고 밖에 달리 풀이할 길이 없을 것이다. 한영탁 (영덕신문 발행인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영덕신문 2004.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