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근무제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주 52시간 근무제가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시행된 지 이제 두 달이 지나고 있다.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워라밸’을 위한 이 좋은 제도에 대해 중소기업들은 잠정적 유예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논의과정에서 노사정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되 규모별로 4단계에 걸쳐 시행하고 특별연장근로는 사업장 형편에 따라 최종 시행단계 후 4년간 한시적으로 허용하며, 근로시간의 정산에 대한 특례업종을 지정하고, 탄력근로제의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등의 후속 조치도 마련했다. 여전히 업계에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무얼까. 문제는 새로운 제도를 감당하기 힘든 사업장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의 평균에 비해 많은 편이다. 개선의 여지는 분명해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생산성과 외국에는 없는 주휴수당을 함께 고려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코로나19로 당장 현장의 일감이 줄었다고는 해도 근로자의 ‘저녁 있는 삶’을 위해 그냥 밀어붙인다고 될 일은 아니다. 사업장마다 가중되는 인건비 부담은 심각하다.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의 경우처럼 새로운 기준의 충족에 당장은 무리가 없는 대기업이나 영향권 밖에 있는 업종들과 달리 노동집약적인 영세사업장일수록 52시간제는 사업장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6월 경총이 내놓은 5인 이상의 영세사업장을 대상으로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조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별도의 준비가 필요치 않은 기업(74.3%)이 다수이지만 일부 기업은 52시간제 시행 전까지 준비가 어렵거나(11.4%) 준비를 아예 못하는(10.5%)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일감이 밀리는 성수기의 조업시간 부족과 인력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시행 시기를 더 늦추고 계도기간을 늘어야 한다고도 답했다. 7월 이후 최근 실시한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는 더 부정적이다. 중소기업 세 곳 중 한 곳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특성상 도입 자체가 어렵다는 응답도 28.7%에 달해 예상보다 부작용이 컸다. 임금감소로 인한 숙련공의 이탈, 필요한 경우 연장근로와 신규인력 충원의 어려움 때문이다. 근로시간을 줄여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려는 정부의 당초 기대가 빗나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심각한 어려움에 빠진 사업장들은 따로 있다. 제조업 생태계의 가장 밑바닥에는 나무의 뿌리처럼 업계를 지탱해 산업의 경쟁력을 지원하는 뿌리산업이 있다. 이다. 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열처리, 표면처리 등 공정처리를 영위하는 사업장들이다.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젊은이들이 취업을 꺼리는 이들 업종에선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까지 막혀 정상적인 공장 가동과 건설공사를 어렵게 한다. 근로 단축은 납품 거래 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져 원청기업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고, 52시간 근무를 초과하면 사업주가 범법자로 전락한다.

디지털 환경은 고용시장의 틀을 변화시키는 메가트랜드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사업장의 업무를 분담하고 언택트와 온라인이 서비스산업을 바꾸는 뉴노멀이 시작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로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 근무의 개념과 방식이 모두 변하는 환경에서 주 52시간 근무를 모든 사업장에 강제하려는 것은 근로시간을 곧 생산력으로 보는 낡은 프레임이다. 노동시장은 자생적 질서에 의해 작동되는 시장이다.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해 노동의 가격을 정하고 근로시간까지 규제해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정책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52시간의 한도 내에서 근로 환경에 맞도록 연장근로를 월 또는 연간 단위로 확대하고 뿌리산업에 대한 준비기간, 고소득‧전문직에 대한 예외의 적용,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등 다양한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소득이 줄어드는 근로자들 역시 불만이다. 초과근무수당이 통상 임금의 20%를 훌쩍 넘는 중소기업의 근로자는 월 340만원의 소득이 250만원으로 줄어든다. 누구나 적게 일하면서 소득을 보장받는 풍요로운 삶은 아름답지만 엄연한 현실을 살펴 직종과 사업장의 형편에 맞게 근로의 최소조건을 정해야 한다. 정작 보호받아야 할 근로자가 외면하는 제도는 불필요한 규제일 뿐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출처- e대한경제 2021. 8.25[칼럼]
<원문>https://www.dnews.co.kr/uhtml/view.jsp?idxno=202108231548311910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