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바른사회 칼럼

	소극적 안락사 판례에 유감 - 김광명
	2004-07-05
소극적 안락사 판례에 유감 최근의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의사와 보호자에게 유죄 판결을 결정했다. 향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중증 뇌 손상 환자의 치료 도중 의사는 보호자에게 환자가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음을 설명하였는데, 이를 들은 보호자는 자의 퇴원서를 쓰고 환자를 집으로 데려가 임종하게 한 사건이다. 이를 안 검찰은 의사와 보호자를 기소하였고 최근 대법원은 의사와 보호자에게 소극적 안락사라는 살인죄를 인정하여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중시하려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싶다. 그러나 약 30년 동안 신경외과 의사로서 비슷한 경우를 수백 번 경험한 필자는 이 판결이 사회와 의료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의사는 환자의 심장과 호흡 기능이 15분 이상 정지되고 회복되지 않으면 사망 판단을 한다. 본 사건의 경우 환자가 사망한 것은 아니고 의사는 사망이나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렸는데 보호자는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환자를 집으로 옮겨 사망하게 된 것이다. 필자의 경험상 이런 경우에는 의사는 보호자의 결정에 따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보호자가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는데도 환자를 붙잡고 있으면 보호자는 그 이후에 발생하는 치료비는 부담을 안 하려고 한다. 이때 치료비는 누가 부담할 것인가? 또한 0.1%의 생존 가능성과 30% 이상의 생존 가능성을 어떻게 정형화하여 판단한 것인가? 둘째, 설사 사망하지 않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더라도 현대 의학은 온갖 의료장비와 약품을 동원하여 중환자실에서 최선의 치료를 하면 5년 이상도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의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되므로, 환자의 예비수입이나 보호자의 간병을 위한 비용 등 간접적인 사회비용을 제외한 순수한 의료비만도 1년에 약 3억원이 소요된다. 더욱 난감한 것은 의료보험공단도 과잉 진료라는 명분으로 치료비의 대부분을 삭감한다는 점이다. 셋째, 중환자실은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추어야 하는 고비용성 병상이므로 병원 중환자실의 병상 수를 한없이 늘릴 수 없는 현실이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가 중환자실의 병상을 많이 차지할수록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하면 소생할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은 중환자실이 없어 사망할 수 있다. 넷째, 대법원은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치료비를 감당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부인과 담당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였는데, 그렇다면 적절한 사회보장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에도 와 보지 못하고 임종한 환자의 보호자는 ‘살인죄’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에는 매년 10만명 이상의 환자들이 병원에 오지 않고 집에서 임종을 맞고 있는데 이들의 보호자들은 잠재적인 살인자들인가? 다섯째, 이 사건은 우리의 열악한 사회복지 제도와 미비한 의료법 체계로 인하여 야기된 문제다.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들은 계속하여 발생할 것이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하였으면, 보호자의 요구에 반하여 합법적으로 퇴원시킬 수 있는 또는 보호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퇴원시키지 않았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예비 분쟁에 대한 해결방안 또한 제시해야 한다. 김광명 (한양대학교 신경외과 교수 / 시민회의 지도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4. 7. 5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