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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은 정무수석이 아니다 - 김일영
	2004-06-22
대통령은 정무수석이 아니다 대통령이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TV에도 나온다고 한다.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앞으로는 가급적 국정 전면에 나서는 것을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등의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일일이 발언에 나서고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과 한나라당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이 약속은 한 달이 못 가 깨지고 말았다. 대통령이 정쟁의 중심에 복귀하게 된 것은 발언을 자제하지 못하는 스타일 탓도 있겠지만 집권 2기 청와대 조직의 제도적 맹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바뀐 청와대 조직의 특징은 정무수석과 국민참여수석을 폐지하고 사회정책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새로 만든 것이다. 국민참여수석의 역할은 시민사회수석으로 흡수되었고, 사회정책수석은 정책실장 밑의 정책기획수석이 하던 일을 분담토록 한 것이니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정무수석의 역할을 할 자리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평소 지론인 당정분리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정무수석실을 없앴다고 밝혔다. 정치는 국회에 일임하고 청와대와 내각은 정책에 집중하되, 청와대는 외교·국방과 장기적인 대통령 프로젝트를, 그리고 내각은 국내의 주요 현안을 맡도록 업무를 분담한다. 각종 정책에 관한 여야와의 협의는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총리실의 국무조정실장이 담당하고, 청와대의 정무적인 의견 전달이 필요한 경우 정치특보가 하면 되기 때문에 정무수석은 없어도 된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떤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사이 의견충돌의 와중에서 노 대통령은 정치특보직을 폐지하고 말았다. 청와대가 정무적 의견을 전달할 통로를 스스로 없앤 것이다. 그렇다고 청와대 정책실이 나서서 당정 간의 조정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았다. 총리가 있었으면 내정에 관한 조정 역할이라도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나마도 여의치 않았고, 이런 상태에서 국무조정실의 역할은 더욱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공백을 메우고 나선 사람은 노 대통령 자신이었다. 대통령이 몸소 나서서 분양원가 공개 불가, 이라크 추가 파병 불변, 행정수도 이전 신속 추진 등을 밝히면서 대통령은 다시 국정의 전면에 나섰고 정쟁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과연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엄밀하게 말해 노 대통령의 집권 2기는 아직 완전히 시작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총리가 임명되지 않았고 내각 일부가 교체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미리 나서서 민감한 현안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쟁의 중심으로 밀어넣을 이유는 없다. 내각이 완전히 구성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맡겨도 될 일을 대통령이 몸소 나서서 총알받이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직 공사 중인 집에 들어가 주인 노릇 하려 하기보다는 완공되기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 때이다. 공사가 끝난 후에도 대통령이 정쟁의 중심에 서지 않으려면 청와대에 별도의 정무실이 필요하다. 물론 총리·정책실·국무조정실이 제 역할을 하면 상황은 호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튀는’ 초선의원이 많고, 의원들의 이념적 성향도 다양하기 때문에 정책적 조정 외에 정치적 조정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것을 정책실이나 국무조정실에서 맡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맡아서는 더욱 안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정무실이고, 대통령은 정무 및 정책적 조정이 있은 후에 발언하는 인내의 덕목을 지녀야 한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4. 6.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