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이스타항공, 컨트롤타워가 없다

신형 엔진 개발을 자축하는 엔지니어와 설계자들의 기념사진이 복도에 걸린 걸 보고 사장이 소리쳤다. “중요한 사람들이 빠졌다. 식당 아주머니, 화장실 청소원과 경비원은 우리 가족 아니냐. 엘리트들끼리 만드는 제품 필요 없다.” ‘회장님’보다는 ‘오야지(아버지)’라고 불리기를 좋아했던 혼다 소이치로의 일화다. 오토바이로 시작해 자동차 → 비행기 → 인공지능로봇 ‘아시모’로 신화를 이어가는 혼다그룹에는 평생 기름때 묻히고 살다 간 창업자의 경영철학이 있다. 그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다. 기업인의 역량과 윤리가 새삼스러운 건 생사의 기로에 선 이스타항공 때문이다.

지난 16일 제주항공은 주식매매계약의 선행조건이 완결되지 못해 인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짧은 입장문을 냈다. 현재 진행 중인 정부의 중재노력을 고려해 최종 결정을 미뤘지만 사실상 노딜(No Deal) 선언이었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각별한 관심에 예의는 갖추어 정부의 특별지원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황은 비관적이다. 특정 항공사 지원은 형평성 문제가 있고 오너가 여당의 국회의원인 점도 특혜시비를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업계는 초비상이다. 대표 국적사인 대한항공마저 알짜배기 기내식사업부와 기내판매사업부의 매각을 진행 중이다. 생살을 도려내는 자구노력들이다. 지난 15일 한국항공협회는 업계의 위기 극복을 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의 지원기간 연장을 정부에 건의했다. 항공업계의 산업기반 붕괴가 우려될 만큼 엄중한 상황으로 항공사들이 내몰리고 있다. 기간산업안정기금에서 제외되는 항공사들을 구제해야 할 정부의 고민도 깊다. 무차별적 지원과 선별적 지원 가운데 한 방법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고, 경제적 파장과 후유증이 어느 경우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타항공의 부실에는 다른 점이 있다.

2007년 창립 이후 외형적으론 승승장구했지만 2016년에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정도로 경영은 불안했다. 창업자인 이상직 회장이 19대 국회의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으로 바깥 일을 하는 동안 회사의 경영진에는 항공의 경험이 없는 의원 보좌관, 당직자, 가족들의 참여가 늘었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사업면허를 받아 비행기를 띄우기만 하면 돈 버는 시절이 지나고 있다는 걸 알았을까. 우호적인 환경 덕분에 2018년까지 잠깐의 연속 흑자도 기록했다. 그러나 재무적 부실은 계속되었고 작년 10월 회사는 매물로 나왔다. 지금의 경영난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리기 어려운 대목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실패로 갈증을 느낀 제주항공이 처음 관심을 가질 때만 해도 기업가치는 2000억원대로 평가됐다. 그러나 매각 대상인 39.6%의 지분가치 960억원은 협상이 시작되자 695억원으로 줄었고 실사를 거치면서 다시 545억원으로 깎였다. 문제는 3월 2일 매매계약이 체결된 이후부터다. 직원의 체불임금 책임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면서 자녀의 편법승계와 유령회사의 탈법 의혹이 제기되고 대통령 사위가 취업했던 해외항공에 지급보증해 준 우발채무도 드러났다. ‘을’의 입장인 신입조종사에게 8000만원씩 받아온 부당교육비 소송 등 이스타항공에는 각종 의혹들이 더해졌다. 납입자본이 252억원인 회사의 자본금은 지난 달 현재 -1042억원. 매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는 금년 말 3000억원 규모로 늘어난다. 휴지조각이 된 주식을 쥐고 있는 주주보다 딱한 건 열심히 일만 했던 1600여명의 직원들이다. 전체 직원의 70%가 휴직할 만큼 자신의 생존부터 걱정해야 하는 제주항공에 인수를 요구하는 이스타항공 노조의 절규는 눈물겹다. 업무 현장에서 고락을 함께 해 온 이스타 가족들은 지금 생계를 위협 받고 있다.

기업의 성패는 경영자의 의사결정이 좌우한다. 인사조직과 자금, 마케팅과 생산, 경쟁전략을 고심하고 판단하는 경영자의 역량은 그래서 생존의 요건이다. 가장 중요한 투자 결정은 흔히 돌다리에 비유된다. 시장수요뿐 아니라 사업에 영향을 주는 법‧제도와 경제‧사회적 요인, 기술진화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 환경요인을 돌다리처럼 두드려보는 치밀함이 따라야 한다. 성공하는 사업가는 열 개 중 흔들리는 돌 하나에 집중하고 때로는 사업을 접는다. 실패하는 사업가는 몇 개 돌만을 믿고 건너뛴다. 공격적 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투자를 판단하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게 이스타항공엔 부족했다. 경영의 실패로 이미 식당 아주머니와 화장실 청소부, 경비원은 일자리를 잃었다. 지상조업을 맡아 온 자회사 이스타포트도 사실상 폐업에 들면서 300여명 직원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구난의 위기에 빠진 이스타항공. 항공업계 초유의 대량 실직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컨트롤 타워에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희망과 책임은 지난 18년간 ‘회장님’으로 그룹을 이끌어 온 이상직 의원의 몫이다. 공인이라면 그 책임은 더 무겁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출처- 건설경제신문 2020. 7.23[칼럼]
<원문>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200722172932691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