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구국 영웅’ 보내는 국가의 예의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지난 1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국가보훈처가 국립서울현충원에 그가 영면(永眠)할 자리를 끝내 마련해주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백 장군에 대한 정부·여당의 푸대접은 보기에 민망스럽다. “동작동에 묻히더라도 친일파의 국립현충원 안장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면 파묘·이장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은 매우 고약한 일이다. 그런데도 백 대장을 정성껏 모셔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압도한다.

백 장군은 6·25전쟁 중 사단장, 군단장, 참모총장 등을 거치면서 절망에 빠진 조국을 지켜낸 구국(救國) 영웅이다. 대한민국이 영토의 90% 이상을 북한군에 점령당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섰던 1950년 8월 경북 칠곡의 다부동전투에서 북한군의 남진(南進)을 저지해 낙동강 전선을 사수했고, 이후 북진(北進)의 선봉으로 평양에 입성했다. 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서울 부근 상공을 둘러보면서 동작동을 국군묘지로 결정한 것도 백 장군이었다.

백 장군은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인으로서, 한·미 양국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과 은성무공훈장을 비롯한 각종 훈장을 받았다. 이렇듯 백 장군은 6·25의 영웅이고 한·미 동맹의 전설이자 상징이었으며, 평소에 6·25 전우들의 곁에 묻히고 싶다고 말해 왔다. 이런 백 장군을 11만 6·25 전우가 잠든 서울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좀 더 장기적으로 본다면, 경북 칠곡군 가산면에 위치한 다부동전적기념관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1950년 8월의 다부동 공방전을 가장 잊을 수 없는 전투로 기억하면서 2019년 경북 칠곡군으로부터 명예군민증을 받았을 때 크게 기뻐했던 백 장군을 다부동에 모시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자존심과 위상을 되찾는 데 모든 것을 바쳤던 샤를 드골 대통령은 역대 영웅과 위인들이 묻힌 팡테옹의 국가유공자 묘지를 사양하고 청년 장교 시절에 살았던 시골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콜롱베라는 농촌 마을은 구국 영웅을 모신 덕분에 매년 10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스라엘의 독립투사로서 핵 개발을 주도했던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도 퇴임 후 키부츠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냈고, 이스라엘 정부는 그의 유언에 따라 모세의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네게브 사막의 아인아브다트 협곡에 그를 안장했다. 영웅에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일본 군복을 입었었다는 사실이 고 박정희 대통령이나 백선엽 장군 같은 분들에게 흠결 사항이 됨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의 번영과 생존에 기여한 공이 그보다 수십 배가 넘지 않는가? 그런데도 공과(功過)를 비교, 평가하지도 않고 허물만 부각시키면서 원하는 색깔을 입히는 것이, 입만 열면 ‘공정(公正)’을 외치는 이들이 하는 일인가? 차제에, 걸핏하면 건국 영웅과 구국 영웅들에게 ‘친일’ 굴레를 씌우기를 좋아하는 인사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미국인들은 독립전쟁을 이끈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지만, 그가 영국군 장교로 복무했었다는 이유로 그를 반역자로 매도하지는 않는다.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도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단지 영국에서 공부했다는 이유로 그를 매도하는 인도인은 없다. 백선엽 대장도 공적이 허물을 압도하는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출처- 문화일보 2020. 7.13[칼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0713010731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