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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관계 재정립 해야 - 제성호
2004-06-10
韓中관계 재정립 해야 주한 중국대사관이 지난달 20일 열린 대만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려던 여야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불참을 요구했고, 이것도 모자라 여야 지도부에 공문을 보내 이들의 행사 참가를 취소토록 해달라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정치적 파문이 일고 있다. 행사 후에는 리루이펑(李瑞峰) 공보관이 “당장 해당 의원들에게 조치를 취하지는 않지만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중국의 외교적 무례와 하대(下待)적 태도가 도를 넘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외교에는 나름의 어법이 있다. 불만이 있더라도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 통례다. 그럼에도 ‘기억할 것’이라는 등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를 깔본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미국이나 일본의 의원들에게도 그렇게 했을까. 십중팔구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우리에게만 …. 그동안 우리 정부는 중국산 수입 꽃게 안에 납덩이가 발견돼도 문제삼지 않았다. 2001년 중국의 한국인 마약사범 처형 때는 우리가 국제법적 책임을 따질 수 있었는데도 중대한 외교적 실수로 잘못 대응했다. 중국의 달라이라마 방한(訪韓) 금지 요청을 우리 정부는 그대로 수용했다. 탈북자문제에 대하여는 ‘조용한 외교’를 표방하면서 저자세로 일관했다. 북핵문제에는 중국의 중재역할에 기대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것들이 누적돼 중국의 대한(對韓) 고자세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는 1992년 8월 한중수교시 이 원칙에 명시적으로 동의했다. 따라서 중국이 한국 정부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해 주도록 요청하는 것은 가능하다. 대만 독립을 주장해 온 천 총통의 취임식에 중국 정부가 신경을 쓰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국민과 정치인 개개인에 대해서까지 정부간 합의의 준수를 요구할 수는 없다. 또 주변국에 ‘대만 고립’ 대열에 동참할 것을 종용하는 행위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더욱이 위협적인 언사를 써가면서까지 국회의원의 대외활동을 통제하려는 것은 내정간섭 내지 외교적 협박에 해당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심각한 외교적 사안에 대해 여당 등 정치권은 항의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꿀먹은 벙어리’인 듯 쉬쉬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행태가 ‘자주외교’에 부합하는 것인지, 만일 유사한 행위를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에게 했더라도 그냥 넘어갔을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맹목적인 반미가 자주가 아니듯이 잘못을 따지지 않고 넘어가는 것 또한 진정한 친중(親中)이라고 할 수 없다. 50년 동맹인 미국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서운하게 생각할 정도로 냉랭하게 대하면서, 10년 친구인 중국에 대해서는 원칙없이 비굴하게 처신한다면 확실히 문제다. 지금 우리가 한미동맹과 한미일 삼각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중국이 그나마 한국을 대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중국에 모든 것을 의탁하려 할 때 충실한 후견자 역할보다는 오만방자한 간섭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구한말 고종(高宗)을 무시하고 사실상 왕노릇 했던 위안스카이(袁世凱)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중국의 힘이 더욱 커져 아시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면 아예 상전노릇 하려들지 모른다. 강대국과의 외교에서는 법과 원칙, 그리고 도덕성이 최고의 무기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중국과의 외교에서 우리의 국가이익을 실현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한중관계의 현 좌표를 올바로 읽고, 장단기 대중외교의 목표와 원칙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 보다 능동적이고 입체적인 외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앞으로 대중관계에서 한국외교가 자주성과 당당함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6. 10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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