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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뿐인 민생정치는 그만 - 김종석
	2004-05-03
말뿐인 민생정치는 그만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 모든 정당과 당선자들이 예외 없이 민생과 경제 챙기기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미 선거운동 기간에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민생을 챙기겠다고 했지만 필자는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이 민생과 경제를 챙기겠다는 말이 솔직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열어 민생을 챙긴다는 것이 대체로 경제부처 장차관을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원회에 불러다 놓고 장시간 질문하거나 이것저것 주문하는 일인데 그런 자리에서 무슨 경제정책이 마련되고 개선될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민생을 챙긴다는 것이 재래시장이나 서민층 거주지역, 중소기업을 방문해서 현장의 소리를 듣고 이를 정부에 전달한다는 것인데 대개는 물가를 어떻게 안정시킬 것이냐, 전세값이나 아파트값은 어떻게 잡을 것이냐, 실업률은 어떻게 낮출 것이냐, 농가 부채는 어떻게 할 것이냐, 신용불량자는 어떻게 할 것이냐,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 등등 정부 당국자들에게 어떻게 좀 해 보라고 민원성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일 텐데 이런 소리는 정부 당국자들도 이미 많이 듣고 있는 내용일 것이고, 또 국회의원들이 정부 당국자보다 더 좋은 해법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정부가 국회의원들의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으면 국회의원들이 입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직접 법률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이지만 정부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제 문제를 국회가 법률 몇 개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면 세상에 가난한 나라, 어려운 기업이 있을 리 없다. 현재 16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민생 법안 중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좌추적권 부활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연기금에 주식투자를 허용하기 위한 기금관리법 개정안과 같이 민생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도 들어 있고, 앞으로 각 정당에서 민생을 챙기겠다고 구상 중인 정책들도 대부분 할당제나 가격 규제, 인허가제와 같은 새로운 규제의 도입이나 세금 감면, 보조금 지급과 같이 재정 부담을 늘리는 내용들이다. 이런 법안들이 어떻게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보호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이번 선거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구 당선자들이 공약으로 지역개발의 기수가 되겠다고 했다. 무엇으로 지역개발을 하겠다는 것인가. 모두 국민 세금을 자기 지역에 끌어다 쓰겠다는 것 아닌가. 나라 경제와 민생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지역이기주의 공약부터 빨리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이 좋다. 경제 문제는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하지 못한다는 현실의 물질적 제약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절약과 선택, 기강과 효율이 기본원칙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에게 괴로운 선택과 고통스런 요구를 해야 하는 것이 경제정책이다. 표 계산과 선심 쓰기에 더 익숙한 정치인들이 스스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의 경험으로만 보면 정치인들이 민생을 챙긴다고 할 때 필자는 솔직히 걱정이 더 앞서는 것이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보호하는 작업은 의사가 환자를 살리는 것 못지않은 전문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정치논리가 개입되면 오히려 더 그르칠 수 있는 것이 경제정책이다.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경제회복과 민생보호를 바란다면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와 집단 이기주의에 흔들리지 않고 정책이 경제원리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면 된다. 그 동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가장 큰 불안 요인은 바로 우리 정치였다. 경제는 정치인들이 챙기지 않아도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만 되면 저절로 잘 굴러가게 되어 있다. 선거가 끝난 지금에도 공연히 노선이니 이념이니 하면서 국민들을 정치적 공리공론에 끌어들이지 말고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를 당분간 잊고, 먹고 사는 일에 전념하도록 해 주는 것이 진정한 민생 정치다.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한국일보 2004. 5. 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