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중심의 대책은 실효성 없다

정부가 일본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종 수출규제에 대한 국제적 대응 방안으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기구(DSB)에 제소하고, 일본의 보호무역 조치를 국제적으로 이슈화해 철회하도록 압박하기로 했다. 또한, 일본의 조치에 상응하는 수출규제 등 보복 조치를 발동하기로 했다. 국내적으로는 삼성, LG 등 기업들에 일본 외 수입처 다변화를 촉구하고, 해당 품목의 국산화를 위해 1조 원을 긴급 지원키로 했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대응책을 다양하게 제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 하나 일본에 결정적 타격을 주기엔 한계가 있다. 일본산 의존율이 90% 내외인 품목을 다른 국가에서 구입하기도 어렵고, 1조 원의 재정 지원으로 국내 양산이 가능하지도 않다. 1조 원은 엄청난 금액이지만,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6조5000억 원이다. 1조 원이 없어 삼성전자가 일본 수출규제를 초비상 상황으로 우려하진 않을 것이다.

보복 조치로 쓸 수 있는 카드도 마땅하지 않다. 더구나 일본과 달리 대체가 어려운 우리나라 제품이나 부품소재가 극히 제한돼 있어 일본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실효성 있게 취하기 어렵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소비자 전문가들의 평가 역시 부정적이다. 오히려 일본 내 반한(反韓) 감정을 부추기고, 한국에 대한 여론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노리는 것으로, 아베 총리는 이러한 분위기를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합리화 및 대상 품목 확대 명분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WTO 제소 역시 문제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수산물 수입 금지를 WTO에 제소해 1차에서 이겨 기세등등했던 일본은 상소심에 최종적으로 져 쓰라린 패배를 맛봤기에 이번엔 WTO 규정을 챙겨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출규제 발표 시점에 일본은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가 있어 ‘화이트(백색) 국가’에 제공했던 포괄적 심사를 건별 심사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1조가 허용하는 안보 위협 시 무역 규제를 허용하는 ‘일반적 예외’를 거론했다. 안보 위협 판단 여부는 조치 발동 국가의 재량이므로 우리나라가 근거를 따져 묻기도 어렵다.

지난 주말 아베 총리는 한 방송사가 주최한 여야 정당 대표 토론회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의 이유로 북한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신뢰 약화의 근거로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이어 한국의 대북 제재에 대한 문제점을 추가한 것이다. 일본 첨단 소재가 한국을 거쳐 북한으로 흘러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함으로써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안보 위협의 근거로 우리나라의 대북 제재 방식을 물증도 없이 언급한 것이다.

더구나 올해 말이면 WTO 상소 기구가 역할을 중지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상소위원(회원국 만장일치로 임명) 정원은 7명이지만, WTO 분쟁 해결 절차에 불만을 가진 미국이 퇴임하는 상소위원 임명 절차를 거부하면서 연말에 상소위원이 1명만 남게 된다. 분쟁 해결에 2∼3년이 소요되는 문제점도 있지만, 한국의 제소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즉 제소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다.

아베 정부의 일방적인 수출규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세계 3대 경제대국의 보호무역주의 부당성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노력은 필요하다. 몇몇 해외 언론은 일본의 조치를 못마땅하게 평가하는 기사를 싣고 있다. 만약 보호무역주의식으로 맞대응할 경우 우리 역시 비난받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은 한국보다 훨씬 더 크다.

우리의 맞대응으로 한·일 간 대립이 장기화하거나 조치 품목이 늘어나게 되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정도로 피해 규모는 예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신(新)경제냉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존의 글로벌 생산 및 무역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으로 우리 경제는 이미 여러 가지 취약점에 노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간 적대관계 지속은 우리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정치·외교적 불만으로 터뜨린 수출규제를 통상 문제로 한정해 일본과 해결책을 찾겠다는 발상은 재고돼야 한다. ‘진정성 있게’ 의제를 조율해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도록 유도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국익과 부합하는 방식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출처-문화일보 2019. 7.11[칼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711010330110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