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인 경제?

문재인 정부 들어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을 유달리 많이 듣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변에 “사람이 우선입니다.”라는 표어도 보인다. “경인선 가자.”라는 말도 인구(人口)에 회자되는데, ‘경인선(經人先)’은 ‘경제도 사람이 먼저’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도록 이 정부에서는 이 말을 강조한다. 그리고 실제 결과를 제쳐두고, 표방하는 구호만 두고 보면, 이 정부는 참으로 인간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정부인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 정부가 사람을 우선하겠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그리고 잘해 보겠다는 의지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세월호’를 연상시키면서 전임 정부가 사람의 생명을 경시했다고 암시하려는 것 같고, 전임 정부들이 사람을 경시했다고 왜곡시키는 것 같아서, 이 정부가 이런 구호를 사용하는 것이 좀 야비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사실 개인이나 정부나 말이 번지르르하면 내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정부도 마찬가지여서, 이 정부의 사람들의 행동에서 사람이 우선되지 않는, 적어도 모든 사람이 우선되지 않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우선 이들이 사용하는 사람의 개념은 일반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 다른 것 같다. 아니면 그들은 그저 립 서비스로만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 정부는 이제까지 어느 정부에서도 보지 못했던 잔인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네 편과 내 편으로 가른다. 따라서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그들이 모든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 ‘네 사람’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더 나아가, 네 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잘못이고 내 편이 하는 일은 항상 옳다는 오만한 인식을 그들의 행동으로부터 엿볼 수 있다.

또 그들은 잘잘못을 개인이 저지른다고 생각하지 않고 집단 모두가 좋거나 나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너희들은 적폐 집단이니, 청산 대상이다.”와 같은 말이 이래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내가 하면 허용되고 너는 해서는 안 된다고. 행동에 대한 판단 기준과 잣대가 다를 때는 법의 지배(rule of law)에 대한 기본 인식이 있는지 의심되기도 한다. 심지어 국민들을 적과 동지로 가르는 태도에서는 분노가 일기도 한다.

이 정부는 ‘모두가 잘 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이 ‘모두’ 안에 네 편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대기업가, 부자, 많이 배운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잘난 사람은 깎아내려서 처지는 사람들과 같아져야 한다. 그래야 이들은 ‘사람’이 되고, 자기편이 된다. 이 정부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담배를 많이 피워 폐암에 걸리면 국가가 치료해 주겠다고 하고, 일하지 않아 가난하게 되어도 가난에서 구제해 주겠다고 한다. 자비롭기 그지없는 정부지만, 그 부담은 정부가 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민들이 진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마치 자기 돈으로 그렇게 한 것처럼 생색을 낸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했으니, 보조금 혜택을 얻는 자들은 ‘사람’이지만 세금을 내는 자들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

이 정부는 개인들의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는 대신 오지랖 넓게 국민더러 이런 일은 하고 저런 일은 하지 말라고 간섭한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이런 저런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협박한다. ‘사람이 우선’이라면 이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정부에서 국민들의 자유는 유명무실하게 된다. 자기의 자유와 권력은 좋아하지만 남의 자유는 싫어하는 탓인가. 이 정부를 이끄는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도 싫어해서 교과서에서 그 말을 없애려는 시도까지 한다. 그러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사람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는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가 아니다.

기업인을 옥죄고 기업 활동을 제한하는 정부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우선되는’ ‘사람’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취하는 자본가와 기업가는 가만두면 안 된다고, 특히 재벌 기업의 세칭 오너라고 하는 자들은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리는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이 이 정부의 인식이지만, 이 정부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재벌 기업이건 대기업이건 기업의 소유주들은 주식 보유자들이며, 바로 노동자들이 그러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본과 노동은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들은 큰 기업 소유주는 내 편이 아니고 작은 기업 소유주는 내 편이라고 하면서 달리 취급한다. 노동자가 자기편이었는데, 큰 기업의 주식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제 자기편이 아니라는 것인가? 이 정부는 편 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논리의 일관성이 없이 네 편 내 편을 혼동하기도 한다.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저 임금을 인상하는 정책을 고집하는 이 정부에서, 취업하지 못한 미숙련 근로자들은 ‘사람’이 아니다. 최저 임금제는 이런 근로자들의 희생 아래 기존 근로자들, 특히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기성 근로자들에게 이익을 준다. 다른 근로자들의 노동 시장 참가를 억제할 수 있으니 기성 근로자들은 그들로부터 경쟁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임금을 올릴 수 있어 좋지만, 취업하지 못하는 많은 예비 근로자들은 실업의 고통을 겪는다. 정부의 최저 임금제에 의해 ‘사람’ 대우받는 집단은 기성 근로자 집단이다. 노조 중에서 특히 민노총의 근로자들은 특권적 대우를 받는 ‘사람’이다. 반면 낮은 임금이라도 일자리를 얻고 싶으나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실업자들은 이 정부에서는 ‘사람’이 아니다.

에너지원 중에서 원자력이 가장 단가도 싸고 친환경적이지만, 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 붙인다. 그로 말미암은 국고 손실이 엄청나고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막대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국민들은 우선되는 ‘사람’이 아니다. 정부는 반핵 환경 단체의 영향력과 이익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고, 태양광 사업자들에게 특혜를 준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환경 단체와 이 정부로부터 사업을 따내는 태양광 사업자들은 우선되니 ‘사람’이다. 타당성을 아무리 주장해도 원자력 전문가들은 배제되니, 그들은 ‘우선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러한 편 가르기는 비단 경제 정책만이 아니라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에서도 보인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네 편이냐 내 편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9천만 건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의 댓글로 대선 여론을 조작한 공범들은 내 편이므로 수사를 미루고, 설사 처벌한다 하더라도, 가볍게 처벌한다. 네 편의 댓글은 체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즉각 수사에 착수하고 엄중 처벌한다. ‘사람’도 잘못을 저지르면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한 쪽은 ‘사람’이고 다른 쪽은 ‘사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편파적 검찰과 사법은 법의 지배를 침해한다. 모든 개인이 법 앞에서 똑같이 대우받는 것이 법의 지배인데, 이렇게 개인 따라 법의 잣대가 다르면, ‘사람’에서 제외되는 자들이 생긴다.

네 편 내 편 가르는 소위 연고주의(cronyism)는 정부가 국민들의 삶에 개입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특히 정부가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면 이러한 연고주의는 더욱 심해진다.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면 정부는 국민들을 대우하는 데 편파적,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부의 ‘보이는 발(visible foot)’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을 대체할 때 이익 집단은 정부 상대로 지대 추구(rent seeking)를 하느라 온갖 자원을 지출한다. 그러한 지대 추구의 결과는 사회적 손실과 부패이다.

이 정부에서는 노동조합의 극심한 지대 추구로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고 연고주의의 증가로 부패가 사회에 퍼지고 있다. 사람이 우선되고 있는가? 지대 추구와 연고주의의 사회에서 네 편은 ‘우선되지’ 않으니 ‘사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모두의 삶이 핍박해질 것이니 모두가 ‘사람’이 아니게 될 것이다.

시장에서 개인에게 내맡겼을 때의 실수에 비해 정부가 실수를 저지르면 그 피해와 후유증은 엄청나게 크다. 반면 시장에서 개인의 실수는 정부의 나쁜 정책에 의해 저질러지는 실수에 비하면 크기가 아주 미미하다. 대통령이 잘못하여 원전을 석탄으로 바꾸는 정책을 실시할 때, 그로 인해 입게 되는 국가적 손실은 엄청나게 크다. 반면 어느 농부가 자기 집의 난방을 전기 보일러 대신 목탄 보일러로 바꾸었을 때, 손해는 작고 국지적이며 일시적이다.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편파적, 차별적으로 대우받지 않는다. 네 사람 내 사람도 없다.

강조하자면, 정부가 함부로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정부가 할 일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정치인들과 관료들에게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라는 특권을 부여한 것이 아니다. 정치가들과 관료들은, 생업에 바쁜 국민들로부터 일정 업무들을 국민들을 대신해서 보편적, 일반적으로 처리하도록 위임을 받은, 국민들의 머슴일 뿐이다. 머슴이 차별적, 편파적 입법과 정책을 통해 주인인 어떤 국민들을 감히 ‘사람’의 반열에서 제외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황수연 (전 경성대 교수)
출처-브릿지경제 2019. 2.25[칼럼]
<원문>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90224010006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