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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국립대 법인화한 까닭 - 권대봉
	2004-04-14
일본이 국립대 법인화한 까닭 일본은 지난 3월부터 도쿄대(東京大)를 비롯한 99개 국립대학을 법인화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방만하게 운영되던 국립대학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일본 정부와 국립대학들이 공동으로 노력한 결과가 현실화한 것이다. 그 동안 몇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정권과 관계없이 국익 차원에서 국립대학의 개혁을 이끌어 왔다. 앞으로 5년간만 국고를 지원하고 교직원들의 신분이 보장될 뿐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이 대학 책임이다. 일본 국공립대학들은 연합과 합병을 거쳐 법인으로 변모했고 교수·교직원들은 스스로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났다. 이에 자극받은 사립대학들도 생존 차원에서 대학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사립 명문 와세다(早稻田)대학이 기업인을 부총장으로 영입, 거액의 운영비를 절감하는 데 성공하자 도쿄대는 그를 법인의 이사로 추대했다. 교수회가 학사행정을 결정하던 국립대학 체제가 법인으로 바뀌자 교수회 대신 이사회가 그 일을 맡게 됐고, 이사의 절반 이상은 기업인들로 구성했다. 일본은 국립대학이 법인화되기 전에 이미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에 그 설립 목적을 살릴 수 있도록 차별화를 인정했다. 대학입시만 하더라도 국립대학은 지난 77년에 설치된 국립대학입시센터를 모체로 하여 2001년에 설립된 독립 행정법인인 대학입시센터가 주관하고 있고, 사립대학은 완전 자율에 맡겼다. 국립대학 입시를 정부가 관장하고 사립대학 입시를 자율에 맡겼다고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자율을 만끽하는 사립대학을 바라보는 일본 국립대학의 구성원들이 대학 자율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국립의 틀을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방만하게 운영되는 국립대학의 재정 운영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고, 통제의 칼을 놓기는 아깝지만 국민의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는 국립의 틀을 벗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국립대학과 일본 정부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본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무산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국립대학 법인화의 또 하나 변수는 구성원들이 쥐고 있었다. 교수들과 교직원들은 국가공무원으로 안주하면서 누릴 수 있었던 통제적 혜택보다는 민간인 신분으로 바뀌었을 때의 자율적 혜택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통해 국민의 세금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통제를 풀고 자율의 폭을 넓혀 주었다. 대학 자율을 바탕으로 세계 초일류 대학으로 발전하고 있는 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초석을 일본은 정부가 앞장서서 마련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 공무원이 가장 많은 부처는 교육인적자원부다. 본부 인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국공립 학교의 교수·교사·교직원이 모두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국립대학을 법인화하게 되면 공무원 수가 그만큼 줄어들어 제살깎기를 해야하는 곳이 교육부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국가 발전 차원에서 국공립대학의 공익법인화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국무회의에서 다른 부처 장관들의 제동으로 이 국립대학 법인화 문제는 물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국립대학 운영 방안 개선 문제는 지난 1년간 인적자원개발회의를 통해 관계 부처의 의견을 다 모은 사안이다. 장관들이 바뀐 다음에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됐는지 모르지만 바뀐 장관들이 제동을 걸었다. 교육부장관이 아닐지라도 한국의 국무위원이라면 이웃 나라 일본의 국립대학이 왜 법인화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조국을 동북아의 중심 국가로 만드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대학들이 국제 경쟁력이 있는 질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관건은 자율권 확보에 있다. 한국의 국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도 건학 이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자율의 폭이 매우 좁다.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학이 법인화한다고 해서 자율을 줄 것도 아닌데, 굳이 법인화를 해서 일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는 국무위원이 행여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 정부 장관들은 일본 정부가 국립대학을 왜 공익법인화했는지 한국의 미래 기회 창출 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뒤, 교육인적자원부의 정책 수립에 훈수를 두어야 할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도 국립대학 법인화 추진 문제를 학벌주의 극복 대책의 일환이 아닌, 대학의 자율과 책무성을 진작시키는 국제 경쟁력 높이기와 인적자원 개발 차원에서 다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4. 4.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