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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깨끗한 선거' - 박효종
	2004-03-30
말로만 '깨끗한 선거' 탄핵정국 와중에서도 4·15 총선정국이 은근히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총선의 화두라면 승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보다 구태의연한 선거문화를 깨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그럼에도 불법이 많이 적발되는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많은 신인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데 과잉 주력하는 것도 한 요인이고, 한편 포상금 제도가 도입되고 엄격해진 선거법을 시행하려는 선관위의 비상한 의지가 작용한 것도 한 요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까지의 선거법 위반이 2000년도 16대 총선의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며, 당선무효 판결이 날 가능성이 있는 선거법 위반도 172건에 달한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이 이 정도니,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훨씬 더 많은 선거법 위반 사례가 발생할 것 같다. 민주사회에서 선거란 민의를 묻는 절차이면서도 동시에 정치권력의 담지자를 선택하는 제도로서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럼에도 우리 선거는 부정부패로 얼룩져 왔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탄핵정국도 지난 대선 때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를 빌미로 촉발된 것이다. 그 당시 대선 때도 노무현 후보나 이회창 후보측은 깨끗한 선거를 부르짖고 새로운 선거문화를 세울 것을 힘주어 강조했는데, 이제 와서 ‘현미경’으로 살펴보니 ‘역시나 선거’였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번에 우리는 결연한 각오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백년하청의 선거’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에서는 10명의 의인이 깨끗한 정치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는 상황이라기보다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한데 이 시점에서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정당별 선거법 위반 사례에서 열린우리당이 가장 많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탄핵정국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여당이라면 이번 선거에서 적어도 나름대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일 터이다. 말로만 ‘클린 정당’을 외치고 ‘클린 이미지’만 보여서 무얼 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다. “잘 달리는 말의 힘은 보통 때가 아니라 언덕을 오를 때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정말 깨끗한 정당은 사생결단의 선거 상황에서 나타난다. 선거 때가 아닌 평소에 깨끗함을 외치다가 정작 그 깨끗함을 입증해야 할 선거에서 불법을 많이 저지른다면 그것은 위선이며, ‘깨끗한 정당’이라기보다는 ‘깨끗한 척하는 정당’일 것이다. 이제 이런 추세로 선거법 위반이 적발되면 상당수의 재선거가 불가피하지 않을까. 물론 불법이 있다면 재선거는 몇 번이고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선거문화가 바뀌고 깨끗한 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다면, 재선거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영국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부패방지법을 제정한 후 수많은 재선거가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재선거에 들어가는 수많은 사회비용과 정치비용을 감안하면, 병이 걸린 다음 과감하게 환부를 도려내기보다는 아예 병이 심각해지기 전에 예방을 하는 편이 낫다. 즉 부정선거와 싸워서 이기기보다 아예 부정선거가 이루어지지 못하게끔 조처하는 것이 상책이다. 선거에 임하는 각 당의 입장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저급하게 이기는 것보다는 품위 있게 이겨야 한다는 결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선거에서 싸우다 보면 ‘편법’이나 ‘불법’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준법’이 승리의 정도다. 탄핵정국만 해도 난장판 정치인데, 불법 선거운동이 난장판 선거문화를 재연하는 것은 정말 보기 싫다. 부디 ‘잘나가는’ 열린우리당이 책임감을 갖고 새로운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서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4. 3. 3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