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중립’ 빠진 수사권 조정은 空虛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공식 발표됐다. 핵심은 경찰에 일반 형사사건의 수사권을 준다는 것이다. 즉, 일반 사건에서 경찰은 1차 수사권을 갖고, 착수한 사건에 대해 수사 종결까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부패·경제·선거사범 등에 대한 특별수사권만 행사하고, 고위공직자의 부패·비리 사건은 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해 담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 발표의 내용은 그동안 알려져 있던 것을 공식화한 것이어서 특별한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수사권 조정을 통해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정부의 방안은 국가기관의 권한에 대한 적절한 배분과 분산이라는 기본 원칙에 부합하므로 그 방향이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형사사법 정책은 국가가 현실을 고려해 국민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므로, 수사권도 국민이 국가에 위임한 권한이란 점에서 한 기관이 무조건 독점해 행사한다는 건 너무 틀에 박힌 생각일 수 있다.

국민주권 국가에서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국가권력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행사돼야 한다. 그래서 민주적 법치국가에서는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국가권력이 분리된다. 이 원칙에 따라 국가기관에 주어진 권한은 적절하게 분산·배분돼야 한다. 물론 국가기관에 위임된 권한이 예외 없이 분산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기관에 위임된 권한은 분산·배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통제이고 견제와 균형이다. 독점된 권한이 잘못되는 것은 견제와 통제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의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행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국가기관이 주어진 권한을 오·남용하는 것은 법과 제도의 미비나 흠으로부터 발생하는 것도 있지만, 정치·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도 있다. 수사권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형사사법 절차지만, 국민의 신체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기관의 권한이란 점에서 공정하게 행사돼야 하고 엄격하게 통제돼야 한다. 그동안 수사권 문제는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로 인한 오·남용의 문제보다는 정치적 수사로 인한 수사권의 자의적 행사가 더 크게 부각됐다. 그러다 보니 검찰의 독점적 권한 중 하나로 수사권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검찰 개혁과 맞물려 수사권 조정 문제가 논의됐다.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수사권을 조정한다면 이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수사권의 조정과 개혁은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 자유 보장 문제이지 검찰 개혁의 문제는 아니다. 또, 수사권의 오·남용 문제는 수사기관의 권한 행사에 있어 위법성과 공직윤리의 문제이지, 어떤 수사기관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2011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경찰에 수사 개시·진행권이 주어졌지만,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그대로 인정했고, 이중 수사 등 부작용만 발생하면서 변한 게 거의 없었다. 수사권 오·남용 문제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반 수사권이 경찰에 부여된다고 해도 검찰의 재수사는 가능하다. 또한, 검찰은 수사와 관련해 영장청구권을 갖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제도가 바뀐다고 해도 수사 절차가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사권 조정은 수사기관의 관계를 단순하게 수평적 관계로 정리하는 것에 불과하다. 수사권이 분산되면 현실에서 국민은 오히려 경우에 따라 이중 수사의 부담을 안게 되는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다. 그래서 수사권 조정은 수사기관의 독립성과 수사권의 통제 장치가 함께 구축돼야 성공할 수 있다.

검찰의 수사권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됐던 것은 정치·경제적 사건에서 법과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 아래 집권 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행사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집권 세력에 의한 검찰의 정치화가 문제였고, 정치적 영향을 받은 검찰이 스스로 정치화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독립해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지 못하면 수사권 조정은 그냥 조정으로 끝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까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권의 합헌적 행사를 바란다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게 우선이다. 또한, 이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길이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출처-문화일보 2018. 6.26[오피니언]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626010330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