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주도성장'하겠다는 건가

제1차 세계대전 초기 한 영국군 장교가 미국 보스턴을 찾아갔다. 영국군에 입대할 자원병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미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영국군 장교는 우선 제임스 컬리 보스턴 시장을 찾아가 모병에 대한 승인을 요청했다.

컬리 시장은 “그렇게 하시오, 대령. 아예 몽땅 데려가시오”라며 흔쾌히 허락했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영국계 주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뽑아가라는 뜻이었다. 컬리는 아일랜드계 출신으로 평생 앵글로색슨계에 적대적이었다.

컬리는 아일랜드계 빈곤층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폈다. 부유한 영국계 주민에 대해서는 무거운 세금과 선동적인 발언으로 압박하고, 공격했다. 그로 인해 중·상류층 시민들이 대거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보스턴시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실업률과 범죄율이 치솟았다.

경제를 파탄내고도 컬리는 장기간 보스턴의 ‘영주’로 군림했다. 1914~50년에 네 차례에 걸쳐 모두 16년간 보스턴 시장으로 재임했다. 시장 임기 사이사이에 네 차례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고, 한 차례 매서추세츠 주지사 자리에 올랐다. 그의 전기(傳記) 제목인 ‘악당왕(The Rascal King)’처럼 컬리는 두 차례 수감생활을 한 부패 정치인이기도 했다.

하버드대 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안드레이 슐라이퍼는 200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경제를 망가뜨리는 정책으로도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차별적 조세와 방만한 재분배 정책으로 반대세력을 몰아내고, 추종세력을 끌어모아 유권자 지형(地形)을 유리하게 바꾸는 게 그 ‘비결’이라고 했다.

글레이저 교수 등은 컬리 시장을 대표적인 사례로 분석했다. 경제를 악화시키는 정책으로 장기집권했다며 이를 ‘컬리 효과(Curley Effect)’라고 했다. 1974년부터 20년간 디트로이트 시장을 지낸 콜먼 영, 작년말까지 37년간 짐바브웨를 통치했던 로버트 무가베 역시 컬리 효과를 보여주는 케이스로 꼽았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더라도 포퓰리즘은 대체로 컬리 효과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에 해로운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점에서다. 경제를 망칠 의도가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경제 논리를 무시한 정책은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 정치 논리를 앞세우고, 도덕과 선의로 포장한 정책일수록 실패 위험이 더 크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도 그런 측면이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 근로시간의 획일적 단축, 법인세율 인상, 경제민주화, 탈원전 등 일방적으로 경제와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적폐 청산의 정치 논리와 위선적 도덕주의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고 있다.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서강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언제부터인가 ‘노동개혁’이라는 말조차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왜 아직도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 한국 경제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원로 학자들의 경고다.

실제 올들어 심상치 않은 징후가 줄을 잇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 가계 소득이 줄어들고 소득불균형이 크게 악화됐다. 취업자수 증가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영업자들의 월평균 매출이 작년보다 12%나 줄었고, 중소기업 매출도 감소세라고 한다.

이쯤되면 정부 스스로 정책의 타당성을 재검토하는 게 정상이다. 일찍부터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았고, 초반 결과도 그렇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정부 탓은 아니겠지만 상당한 관련이 있을 개연성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호조 속에서 한국 경제에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는 원인을 달리 설명하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오히려 어깃장을 놓고 있다. 최근 고위 당·정·청(黨政靑) 협의에서 여당은 “깜짝 놀랄 만한”, “상상 이상으로”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했다. “긍정적 효과가 90%”라더니 이제는 정부가 돈을 충분히 풀지 않은게 문제라는 새 핑계를 대고 있다.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재정 확대의 필요성은 있다. 사회안전망 측면에서도 한국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선진국들과 비교해 국가 부채 규모가 안정적인 수준이고, 세금도 기대 이상으로 잘 걷히고 있어 재정지출을 늘릴 여력이 있다.

하지만 돈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여당이 그렇게 강조했던 일자리 추경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술혁신형 청년 창업가 1500명에게 1인당 최대 1억원의 창업상품권을 지원하고, 30년 넘게 장사한 소상공인을 ‘백년가게’로 육성한다는 등 엉뚱한 사업이 적지 않다. 기업이 스스로 커나갈 수 있는 환경과 생태계 조성보다 그냥 남는 돈 뿌리는 데 급급한 인상이다.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깜짝 놀랄 정도의 재정지출 확대는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정책이다. 줄줄 새는 돈이 더 늘어날게 뻔하다. 정부 지원금 타내는데 도가 튼 사람들만 살판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닌 ‘눈먼 돈 주도성장’을 하겠다는 뜻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 정부의 의도와 현실 인식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김병주(서강대 명예교수)
출처-조선비즈 2018. 6.26[칼럼]
<원문>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5/20180625019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