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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에게 바란다 - 정진영
2004-03-29
박근혜 대표에게 바란다 탄핵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박근혜 대표가 선출됐다. 39년 만에 여성 정치인이 위기에 빠진 제1야당의 대표를 맡은 것 자체가 신선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총선을 불과 20일 앞둔 시점에, 그것도 당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인 상황에서 출범한 박 대표 체제가 순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 대표 개인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극심해질 수 있고, 박 대표가 공언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개혁이 당내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 대표가 자신과 한나라당, 그리고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첫째, 박 대표는 우선 도덕성과 자질을 갖춘 정치지도자임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박 대표에 대한 국민들의 즉각적인 생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은 곧 박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가 박 대표에 대한 평가로까지 이어짐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의 경제적 치적에 대해 비판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독재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독재가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악이었다는 주장은 오늘의 한국정치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박 대표는 개인적 차원에서라도 부친인 박 대통령이 이룩한 경제발전이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는 훌륭한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우리는 이제 완전한 사상의 자유, 완전히 자유로운 정치적 경쟁을 허용할 수 있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다. 조국 근대화 시기의 정치와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의 정치는 달라야 한다는 점을 박 대표 스스로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60~70년대를 땀과 눈물로 살아온 근대화 세대의 자긍심을 높여 줄 수 있다. 둘째, 박 대표는 인적 쇄신으로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혁신해야 한다. 한나라당에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껏 당내 소수파로 영향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 하면 고리타분한 사람들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거듭나기 위한 최우선의 과제는 과거와 인적인 단절을 이룩하는 것이다. 선대위와 당직의 전면에 소장파들을 배치하고, 이들이 실제로 당 운영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례대표 후보의 공천도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죄하려면 잘못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 셋째, 한나라당의 이념적 정체성도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자유시장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자유주의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사상의 자유, 정치적 경쟁의 자유는 대폭적으로 확대하자고 주장하되, 시장의 자유경쟁을 제한하는 조치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박세일 교수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이 이러한 변신에 성공한다면 국민들은 다시 지지를 보낼 것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이 얻고 있는 높은 지지도는 야당이 잘못해서 얻은 반사이익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정부와 여당의 잘못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던 과거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구태정치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정치적 경쟁이 자유로워지면 자신이 잘해야만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정진영 (경희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4. 3. 29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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