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과 고문 받지 않을 권리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획을 그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나온 말이다. 이 이후 6.10민주화운동으로 제9차 개정헌법인 현행 헌법이 태어났다. 고문은 반인륜적 범죄이다. 고문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황폐화시킨다.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붕괴시키고 인간의 가치를 부정한다. 고문은 그 경중에 상관없이 인간 자체를 말살하는 행위로, 인간에 대한 학대나 가혹행위도 고문에 준하는 범죄행위이다.

고문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범죄행위이다. 과거에는 범죄사건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방법으로, 전시(戰時)에는 승리를 위하여 묵인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고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잔혹한 반인륜적 범죄이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고문금지운동을 오랫동안 전개했다. 1975년 국제연합 총회는 고문금지선언을 채택했다. 그 후 국제연합은 고문금지를 위한 국제규범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1984년 국제연합 인권위원회는 고문금지조약을 만들었다.

1984년 제정된 고문금지조약의 정식명칭은 ‘고문, 그 밖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행위, 또는 처벌을 금지하는 조약’이다. 이 조약은 33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1987년 발효됐다. 우리나라는 1994년 이 조약에 대한 국회의 동위를 얻었고 1995년 2월 8일 발효됐다. 이 조약의 전문에는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유래하는 권리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조약의 제1조를 보면 고문은 공무 종사자 또는 그에 준하는 자가 정보 취득, 자백 목적으로 또는 인종편견 등을 바탕으로 육체적·정신적으로 현저하게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제2조는 조약가입국은 고문금지를 위한 법적 조치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조약에 가입하기 이전에 이미 헌법 제12조 제2항에서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문화해 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문을 행한 자에 대하여 형법은 처벌하고 있으며, 고문을 당한 자는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고문은 공무를 수행하는 자가 고의로 개인에게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목적이나 수단을 불문한다. 고문 자체를 범죄로 보기 때문에 고문을 통해 얻은 자백에 대해서는 증거능력이나 증명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 대법원은 밤샘수사를 통해 얻은 자백에 대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문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에서 경중을 가리지 않고 형사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행위가 고문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공권력의 행사에서 가혹행위 등도 고문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검찰이나 경찰 등 형사사법기관에서 수사를 받을 때 당사자가 동의하면 CCTV로 심문과정을 촬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는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이나 가혹행위 등을 받는지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과거 정권의 유지를 위해 또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미명 하에 고문을 자행하면서 인권을 유린한 역사가 있다. 헌법이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고문을 금지하고 있는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은 것이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출처-천지일보 2018. 5.31[칼럼]
<원문>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526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