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타결 서두르다 ‘환율 합의’ 덫 걸렸나 걱정

지난 3월 말 우리나라와 미국은 철강 관세와 한미 FTA 개정협상을 전격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통상당국은 “미국에 명분을 주고 실리를 챙겼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표 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미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과 환율 개입 금지 관련 사항을 합의했다고 발표하면서 우리 통상당국 발표에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 규정인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철강에 대한 무역보호조치를 모색하도록 미 상무부에 지시했다. 현재 미국산 철강이 자국 내 수요의 71%를 충당하고 있으나 이를 80%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 3가지를 미 상무부가 대통령에 권고했다. 3개 권고안은 첫째, 글로벌 일괄 철강 관세 24% 관세 적용, 둘째는 한국을 포함한 12개 수출국에 최소 54% 관세, 셋째는 철강 수출량을 2017년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모든 수출국에 25% 관세를 일괄적으로 부과하는 첫 번째 안을 결정했다.

WTO가 금지하는 쿼터를 설정했고 관세가 전혀 부과되고 있지 않은 품목에 무리하게 국내법을 적용해 일방적으로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국제 통상 규범과 경제 논리에 맞지 않는 것으로 국내외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이유로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시켰고 미 USTR에 추가 관세 면제 국가를 선정하도록 했다.

미국과 동맹국으로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포함된 두 번째 안이 유력한 것으로 보도되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패닉에 빠지기도 했다. 한미 FTA 개정협상과 철강관세협상 시점이 겹쳤고 우리 통상교섭본부가 이들 2가지 통상 현안을 미 USTR과 협상을 타결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이 컸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우리나라 통상당국은 미국에 별로 양보하지 않고 세계 최초로 미국 철강 관세 면제를 받는 국가가 됐다고 홍보했다. 조기 타결은 인정되지만 협상 내용으로 보면 그다지 자랑스럽게 떠벌릴 일이 아니다. 환율 합의 논란도 있는데 환율 개입 방지가 국제적으로 적용된다면 우리 경제에는 치명타다.

철강에 대한 글로벌 초과 공급과 보호무역주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철강의 글로벌 초과 공급 주범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지난 몇 년 사이 미중 간 전략 대화에서 철강은 단골 메뉴였다. 중국이 미국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미국은 반덤핑과 상계관세를 부과해 몇 개 품목을 제외하고 중국산 철강 수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 철강산업은 결코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생산이 늘어났다. 세계철강협회에 의하면, 2007년 이후 중국의 철강(조강) 생산량은 두 배로 증가했고, 2016년 연간 생산량은 8억t을 초과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3년간 철강 수출액의 평균 70%까지 수출하는 쿼터를 설정하기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미 철강 수출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유정용 강관 쿼터는 51%로 낮게 책정했다. 유정용 강관은 고수익 품목이고 국내 업체는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유정용 강관에 대해 추가 양보한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타결한 내용은 미 상무부가 권고했던 세 번째 안이었던 철강 수출량을 2017년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더구나 철강 쿼터의 적용 기한도 없으므로 국내 산업 피해는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에 ‘빛 좋은 개살구’를 주고 왔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조기 타결을 서두르다가 불리하게 협상하지 않았나 우려된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출처-매경이코노미 2018. 4.16[경제칼럼]
<원문>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8&no=240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