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기본권, 그리고 헌법개정

인권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르네상스 이후 시민계급이 형성되면서 인간은 자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계몽주의를 통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을 자각하게 됐다. 인권의 역사에서 보면 인간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오랜 시간 투쟁했고, 자유를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해 평등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이 결과 자유와 평등은 근대 입헌주의에 스며들어 헌법에 명문화됐고 오늘날까지 헌법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 이전의 헌법은 권리장전이었고, 인권이 헌법의 전부였다. 그런데 인권이 법제화된다고 다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의 기본조직과 그 조직의 권한을 규정했고, 이것이 현대 헌법의 내용을 구성하게 됐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헌법을 제정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은 인권 중에서도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기본권이란 이름으로 규정해 보장하고 있다. 그래서 인권과 기본권은 국가의 실정법에 의해 보장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물론 그 구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인권이 국가의 법질서 속에서 보호되는 기본권과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국가에 속한 국민이 다른 국가의 법질서에 따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다 보호받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인권은 선언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인권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국가의 헌법질서에서 보장받는 기본권과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서, 헌법개정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했다. 그동안 개헌논의는 무성했지만 개헌안이 만들어져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발의된 것은 1987년 개헌이후 처음이다. 그래서 이번 개헌안 발의는 개헌안 내용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 개헌안 논의는 대부분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됐지만, 이번에는 기본권에 관한 새로운 내용도 포함됨으로써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기본권 규정에 새삼 인류보편적인 인권들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헌법을 보면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만 했는데, 개헌안에는 기본권의 내용에 따라 사람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기본권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헌법에 기본권의 주체를 사람으로 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헌법은 국민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절차를 밟아 만들어진 국가의 문서이고 인권선언문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이 비록 국민을 기본권의 주체로 하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에 대해서는 외국인이나 무국적자도 인간으로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일차적으로 해야 할 책무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국가권력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에 그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개헌작업에서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그 내용을 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헌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고민하는 이유도 국가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 교수 헌법학)
출처-천지일보 2018. 4.12[칼럼]
<원문>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511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