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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제도적 문제 - 정진영
2004-03-19
한국 민주주의 제도적 문제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의 사상에 기초한 정치 질서이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상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도 제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모든 국민이 모여 국사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소위 직접민주주의 방식은 실현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민들이 선출한 대표자를 통하여 주권이 행사되는 대의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다. 이 체제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이고 심부름꾼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들이 주인인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선거를 통한 심판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 선거가 없는 시기에 국민의 대표자들이 국민을 배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안이 정치제도를 통한 보완이다. 권력기관들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권력의 남용과 오용을 막아 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택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대통령과 의회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그 핵심이다.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국민을 대표한다. 물론 대통령과 의회는 다른 방법으로 선출된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선출된 두 대표기관이 서로를 견제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구조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국민을 대표하는 두 개의 권력기구가 서로 대립할 때 나타난다. 흔히 이야기하는 분점정부, 여소야대의 상황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대통령중심제를 잘 운영해 오고 있는 미국의 경우, 양당제와 정당 내부의 민주화로 이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 양당제는 분점정부의 출현 가능성을 낮추고, 정당 민주화는 의원들이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민들의 의사를 잘 반영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 두 가지 요건을 모두 결여하고 있다. 지역주의가 다당제를 출현시키고 정당 민주화는 매우 미흡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통령과 국회가 충돌하거나, 아니면 국회가 대통령의 시녀가 된다.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면 정치적 혼란이 야기되기 쉽고, 여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면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기 어렵게 된다. 이번 대통령 탄핵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시 한번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4년 전 16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른바 ‘바꿔’ 열풍 속에 정치신인들이 상당수 진출했다. 이렇게 구성된 16대 국회와 1년4개월 전에 선출된 노무현 대통령 사이에 대충돌이 일어났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저희들이 어떻게 탄핵할 수 있느냐”고 분노한다.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뽑은 국회가 헌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을 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응수한다. 탄핵 반대론은 민주주의의 내용을 중시하고, 탄핵 찬성론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민주주의의 절차가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는가.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들 때문이다. 첫째, 다당제와 분점정부의 출현 경향이다. 지역주의 해소, 대선과 총선의 시기 조정 등이 이 문제의 해결책이다. 둘째, 정당들 내부의 민주화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 상향식 공천제가 좋은 처방이다. 셋째, 소선거구·다수대표제의 문제점이다. 당선자의 대표성이 낮기 때문이다. 대선거구·비례대표제를 처방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내각제 정부 형태에 알맞은 선거제도이다. 17대 국회에서는 한국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이러한 제도적 문제점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정진영 (경희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4. 3. 19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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