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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패배한 쪽이 물러서야 - 김일영
2004-03-17
[자료집]낙하산인사_토론회.pdf
총선 패배한 쪽이 물러서야 선거가 국회―대통령 충돌해결…승패의 기준은 過半확보 여부 일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일이 벌어졌다.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은 절차적 정당성 면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 점에서 헌정(憲政) 중단이 아니라 헌법 절차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 맞다. 그러나 실질적 정당성 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야당이 나열한 세 가지 사유가 과연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사안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수습하는 일만 남았다. 몇 가지 해결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헌법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헌재는 가부(可否) 외에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기각도 크게 보면 부(否)에 속한다. 둘째는 대통령과 야당 중 어느 한쪽이 양보하는 방안이다. 대통령의 양보는 사퇴로, 야당의 양보는 탄핵 소추(訴追) 철회로 나타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국회가 같이 물러서는 방안이 있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국을 탄핵 소추 이전으로 원위치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가능성은 극히 낮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4·15 총선이 목전에 있다는 사실이다. 탄핵 정국이 벌어진 직접적 원인이 총선 전략 때문이지만, 총선은 이 딜레마를 풀 수 있는 실마리도 제공해 줄 수 있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볼 때 현재의 탄핵 사태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하에서 지난 1년 동안 계속된 의회와 대통령 간 힘겨루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한국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대통령제 자체에 내재된 문제이다. 대통령제하에서 국민은 대선과 총선을 통해 대통령과 의회에 서로 다른 정당성을 부여한다. 만약 두 선거의 결과가 일치해 ‘여대야소(與大野小)’가 되면 두 정당성이 합치되지만, 여소야대가 되면 이중의 정당성이 발생한다. 후자의 경우를 흔히 ‘분점(分占) 정부(divided government)’라고 하는데, 이 경우 이중의 정당성은 서로 충돌할 수 있으며, 그 가장 극적인 표현이 탄핵이다. 대통령제하에서 이중의 정당성이 충돌할 경우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우리 헌법은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별도의 헌법기관인 헌재에 맡기고 있다. 따라서 헌법 절차에 따라서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교과서적으로는 정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통령제하에서 국민이 부여하는 두 가지 정당성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인 총선이 우리의 목전에 있다. 대의(代議)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일반 의지’는 선거를 통해서만 드러나며, 총선은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두 절차 중 하나다. 더구나 이번 총선은 탄핵 사태로 인해 그 의미가 남다르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을 넘어서 대통령에 대한 신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총선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척도로 삼아 국회와 대통령이 탄핵 문제에 대한 결말을 지을 것을 제안하고 싶다. 여당이나 범(汎)야당 중 어느 한쪽이 반수를 훨씬 넘는 경우와 같이 결과가 분명하면, 야당이나 대통령은 즉각 철회든 사퇴든 행동을 취해야 한다. 어느 쪽도 과반에 미달하면서 의석이 황금분할되는 식으로 애매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4당 구도하에서 어쩌면 이것의 확률이 가장 높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결과가 나오면 양쪽이 모두 양보해야 한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民意)가 극단적 대결을 피하는 것이라면 정치권 전체가 그것을 수용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4. 3. 17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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