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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정치에 옐로카드를 뽑자 - 유민봉
	2004-03-16
혼란정치에 옐로카드를 뽑자 지난해 9월 21일 K리그 수원-울산전이다. 울산이 2 대 1로 앞선 후반 40분 울산 선수가 수원의 뚜따를 뒤에서 잡아당겨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한다. 울산 선수들은 판정에 항의하여 벤치로 철수하고 해설위원은 오심이라며 한쪽 편에 선다. 경기는 5분 뒤 재개되지만 신경전 속에 몸싸움이 계속된다. 더구나 로스 타임 없이 주심이 경기를 끝내자 흥분한 울산 코치가 경기장으로 뛰어들고 그 사이 홈팀 수원 관중이 그라운드로 들어와 상대 선수를 폭행한다. 이후 선수, 관중, 코칭 스태프가 그라운드에서 뒤엉키며 난장판이 된다. 오늘의 한국 정치판이 애매한 반칙과 판정에서 난동까지 이어진 축구를 꼭 닮았다. 이번 정국의 혼란도 멀게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가깝게는 대통령의 선거 개입성 발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불법 대선자금 액수가 드러나면서 야당은 코너로 몰리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탈출구를 찾는다. 그때 대통령이 논란의 선거 관련 발언을 하고 야당은 이를 놓칠세라 대통령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전선의 심각함을 알고 관중석의 국민이 대통령과 야당에 한 발씩 물러설 것을 호소한다. 사과하고, 탄핵안을 거두라고. 하지만 그런 호소와 야유도 이미 목숨을 건 싸움판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라운드에는 지금 승자와 패자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여야가 모두 계산된 작전의 결과인지 모른다. 그러니 난동의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만이 불쌍할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마음이 편치 않다. 총선까지는 여야와 열성팬들은 국민을 아랑곳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관중석의 국민 스스로가 서로에게 큰소리로 외쳐야 한다. ‘자리에 앉아요. 일어서지 말아요.’ 우리 모두가 그라운드의 혼란과 관중석의 웅성거림을 진정시키는 노력을 할 때다. 전체 국민의 대표선수인 대통령을 지역 대표선수들이 모여 밀어낸 형국이니 국가의 위기이고 불안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위기 관리 시스템이 있어 다행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할 것이고,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가 인준한 국무총리가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것을 믿는다. 여기에 위기마다 지혜를 모아 극복해 온 국민이 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의 말도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극한의 무질서를 넘어서면 새로운 질서가 창조된다고. 사태를 중개하는 아나운서와 해설가 및 기자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전해야 하며 심판을 대신하는 성급한 해설로 혼란을 부추기면 안 된다. 지난 금요일, 한 FM 음악방송 진행자가 이번 탄핵에 대한 소견을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위험한 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의 흥분을 진정시키고 현명한 판단을 돕는 공정한 보도이다. 언론은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다. 혼란은 극렬 지지자에 의해 증폭되기 쉽다. 그들의 충성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질서 안에서의 충성심이어야지 질서 밖의 분노여선 안 된다. 경찰은 그 질서의 선을 분명히 지켜야 한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유권자다. 이들은 앞으로 새 경기를 시작할 선수(국회의원) 선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고르기가 정말 쉽지 않다. 인물도 보고, 정당도 보고, 정국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 스님은 “화는 화가 가라앉았을 때 내라”는 말을 했다. 지금의 화가 식은 뒤 이성적으로 판단했으면 좋겠다. 싸움 잘하는 유능한 정치꾼보다 반칙 안하고 열심히 뛸 성실한 일꾼을 뽑았으면 좋겠다. 소백산과 태백산의 경계에 고치재가 있다. 빗방울이 고개 정상의 남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으로 흐르고 북쪽으로 떨어지면 한강으로 흐른다. 한 치의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천 리로 멀어진다. 경기장 난동, 정치판 난동, 모두 시작은 애매한 반칙과 서로의 불신이었다. 우리나라는 인물 동상이 참 적은 나라다. 그만큼 인정에 인색하다는 얘기다. 이제 30의 잘못으로 70까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70은 인정하는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은 대통령, 야당, 여당, 그리고 국민 모두가 명심할 일이다. 그 조그만 씨앗이 분열과 혼란을 넘어 화합과 질서의 큰 열매를 맺을 것이다. 유민봉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행정학 교수 / 시민회의 바른행정포럼 회장) 출처 - 문화일보 2004. 3. 1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