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 트렌드 '조인트벤처'와 정부의 좌고우면

최근 항공 업계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로 다른 항공사가 아예 처음부터 함께 영업하고 수익을 공동으로 배분하는 조인트벤처(Joint Venture) 방식이 그것이다. 좌석 판매를 대신해주거나 회원사의 항공편에 자사의 승객을 탑승시키는 현재의 제휴, 자사 중심으로 영업을 하고 부족한 부분은 상대방의 자원으로 보완하는 제한적 협력과는 강도가 다르다.

중국과 유럽이 조인트벤처 경쟁에 불을 붙였다.

2006년 중국 남방항공 자회사인 샤먼항공은 에어프랑스·KLM과 중국~유럽 구간에서 조인트벤처를 시작했다. 동방항공과 에어차이나 등 중국의 3대 항공사는 허브 공항인 광저우공항의 수요가 급증하자 모두 조인트벤처에 참여했다. 일본은 2011년 JAL과 ANA가 세계 1·2위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항공과 태평양 노선에서 동시에 조인트벤처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유럽 대표 항공사들을 파트너로 삼아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지금도 세계 메이저 항공사들은 시장 방어와 확대를 위해 허브 공항을 거점으로 갖고 있는 파트너를 경쟁적으로 찾고 있다. 조인트벤처가 늘어나면서 1990년대부터 세계 항공 업계의 경쟁과 협력을 주도해온 스타얼라이언스, 스카이팀, 원월드 등 3대 제휴 그룹의 결속에도 균열이 감지된다. 회원사들이 제휴 그룹 밖에서도 각자 새로운 협력 대상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3년 원월드 회원사인 호주의 콴타스항공은 중동 에미레이트항공과 조인트벤처를 맺어 두바이공항을 허브로 구축했다. 재작년 중국 동방항공도 콴타스항공을 통해 대양주의 연계 노선을 확대했다. 글로벌 항공사와 지역에 기반을 둔 저비용항공사(LCC) 간 조인트벤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해외 거점 공항 확보에 적극적인 델타항공은 최근까지 대양주와 남미의 대표적인 LCC들을 파트너로 삼아 노선을 확대 중이다.

이는 세계 항공 업계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해까지 18건의 조인트벤처를 체결한 약 30개 항공사는 상대국의 거점 공항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노선을 늘려 나가고 있다.

문제는 국내 항공 업계다. 동북아시아 허브 공항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인천공항에는 아직 조인트벤처 항공사가 없다. 뒤늦게나마 지난해 6월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조인트벤처 계약을 체결했으나 아직도 정부는 허가하지 않고 있다. 태평양 노선에서 독과점 폐해를 우려하는 정부의 좌고우면이 안타깝다. 이 노선은 한·중·일의 각축장이다. 지난 10년간 14.5%씩 성장하면서 선두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중국이 주도권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시장점유율이 19.2%에 불과한 이 노선에서 국적항공사의 독과점 우려는 우리만의 착각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인천공항은 네트워크 확대와 환승객 유치 경쟁에서 크게 불리해질 것이다. 항공 업계 역시 기존의 제휴만으로는 현재의 시장 유지가 쉽지 않게 된다.

제휴나 조인트벤처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일시적으로 협력을 맺는 것이다. 협력관계는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변한다. `적과의 동침`으로 비유되는 이유다. 대한항공과 델타는 상호 이익을 위해 공동 노력을 맹세하는 동맹관계가 아니다. 한때 긴밀했던 두 항공사는 2013년 결별한 경험이 있다. 델타 측 조인트벤처 요구가 갈라선 이유다. 대한항공과 결별하고 일본 나리타공항에 둥지를 틀었던 델타가 이번에 다시 인천공항에 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은 두 항공사의 조인트벤처를 허가했다. 한국 정부가 시간을 계속 끈다면 조급해진 델타가 또 다른 파트너를 찾아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언론은 동방항공에 지분까지 투자하고 있는 델타항공의 한국 둥지 찾기에 많은 관심과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적댈수록 우려가 기대로 바뀔지도 모른다. 조인트벤처의 결렬은 허브 경쟁을 하고 있는 인천공항의 위기이기도 하다. 환경 변화를 제대로 읽고 산업계를 지원해야 하는 국토교통부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출처-매일경제 2018. 3.8[기고]
<원문>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154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