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도이모이’ 나선 베트남 금융위기 상처 딛고 재도약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국내에서는 베트남 펀드 투자 열풍이 불었다. 이후 투자자들은 꽤 오랫동안 반 토막 난 펀드를 바라보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당시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펀드 매입을 권유했던 증권사 탓인지 뭉칫돈이 베트남 펀드에 몰렸지만, 베트남의 펀더멘털이 달라진 것은 없었기에 주가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의 ‘도이모이(혁신)’ 정책에 기대를 걸었겠지만,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을 제외하고는 베트남 투자 환경은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열악하기만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은 베트남 경제는 오랫동안 성장 부진에 시달렸다.

그러다 베트남이 다시 부각되는 계기가 있었다. 중국에서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강도 높은 기업 규제를 단행했다. 인건비가 치솟으면서 ‘차이나 리스크’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탈중국과 ‘China+1’을 모색하게 된다. 추가 생산기지 대안으로 베트남이 부각된 것은 지리적 인접성 외에 베트남 투자 환경 개선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경상수지 적자 누적으로 고심하던 베트남은 투자 환경을 개선해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주요 교역국과의 무역협정 체결로 수출 인프라 구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낙후된 경제통상 제도를 가진 베트남이 미국이 주도하는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TPP 협상에 참여하는 것은 개혁개방에 대한 국가적 의지 없이는 불가능했다. 당장 통상 분야 전문 인력이 없어 미국 등 국제사회 지원을 받으며 협상했으나, TPP 덕분에 베트남은 자국 경제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고찰하고 개선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사실 베트남은 TPP의 전반적인 구도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통해 자국산 섬유·의류 수출을 확대하는 목적에서 TPP에 참여했다. 하지만 통상 환경 개선이 대미 수출 증가보다 더 큰 혜택을 갖다줄 수 있다는 점을 협상 과정에서 인식하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TPP 탈퇴를 결정했음에도 베트남은 일본 등 11개국과 함께 ‘TPP-11’을 출범시킨다는 입장이다.

세계 경제 회복과 China+1 추세에 힘입어 베트남은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근본적인 체질 변화 없이는 또다시 경제난을 맞을 수 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이 발간한 국가경쟁력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베트남 경쟁력은 지난해보다 5단계 뛰어올라 사상 최고 수준인 세계 55위를 기록했다. TPP-11 발효를 위해 경제통상 제도를 개선시켰기에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외국인 투자 유입 증가로 지난해 2159억달러라는 사상 최대 수출 실적과 중국보다 높은 6.81%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성적표 이면에는 삼성, LG 등 우리 기업 역할이 컸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해 다낭에서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 베트남은 ‘신(新)도이모이’로 불리는 친기업 정책을 발표했다. 글로벌 수준에 뒤처진 베트남 관행을 고쳐야만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비즈니스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20% 법인세율을 15~17%로 인하하는 방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세계적인 법인세 인하 추세와 보조를 맞추면서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 확대를 위한 포석이 없으면, 미얀마와 인도 등 경쟁국으로 투자가 몰리고 베트남이 소외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지난 1년간 베트남 주식시장은 초활황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인근 동남아 국가 평균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북미 지역보다 높다. 신(新)도이모이 정책이 착실하게 지속돼 투자자들 기대를 채워줬으면 한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출처-매경이코노미 2018. 2.26[경제칼럼]
<원문>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8&no=12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