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美 FTA 개정협상 ‘패’ 너무 드러내지 마라

지난 1월 5일 미 워싱턴에서 한미 FTA 개정협상이 열렸다. 대부분 FTA 협상에서 1차 협상은 탐색전 성격이 강하다.

양측은 서로 속내를 보이지 않으면서 그동안 주장해왔던 이슈를 주로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투자자정부제소권(ISD)과 무역구제 개선 등 관심 분야를 밝혔고, 미국은 자동차 무역적자 해소를 집중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ISD는 2006~2007년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제기된 핵심 쟁점 이슈 중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투자자가 정부 정책 변화로 손해를 보면 투자국 사법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는 현지 사법부가 투자국 정부 조치를 두둔할 것이므로 공정한 판결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좌파 정권이 집권했던 남미 등에서 외국인 투자자 자산을 몰수한 사례도 있다. 외국인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가 바로 ISD다. 한국은 ‘먹튀’ 논란을 낳았던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ISD로 곤란을 겪었다. 미국 기업이지만, 한미 FTA가 아닌 한-벨기에-룩셈부르크 ISD를 근거로 우리 정부를 제소했다. 론스타는 ISD를 통해 한국 정부와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ISD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목됐다. 당시 한미 FTA를 반대했던 진보 성향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ISD가 공공정책 권한 침해, 분쟁해결 절차의 편파 판정, 사법주권 훼손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외국 기업에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한국 정부가 ‘식물정부’로 전락할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ISD는 일정 요건을 충족해야 외국 기업이 투자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 ISD는 외국 자본을 우대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부당한 규제를 하지 말라는 ‘국제적 약속’으로 이해해야 한다.

어떤 좋은 제도라도 상황에 따라 개정할 필요성이 있고, 산업 발전 전략 혹은 협상 전략 차원에서 기존 협정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사실 ISD는 장점이 많은 제도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는 달리 ISD는 그동안 한미 FTA 독소조항으로 거론돼왔다.

물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ISD 일부 내용을 개정할 수 있다. 투자자 보호 범위에 ‘설립 전 투자’를 ‘설립 후 투자’로 변경하거나 ISD 구성 요건을 강화하는 것 등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협상에 능한 미국 통상당국은 한국이 요구한 ISD 개정에 난색을 표하면서 전체 협상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해나가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국이 절실하게 요청하는 사안일수록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첫 주 워싱턴 1차 협상에서 한국은 ISD 개정을 미국에 요구했다는 점을 국내외 언론에 두루 홍보했다. 국내 언론보도 영어 번역본이 24시간 이내 미국에 전달되는 상황에서 핵심 관심사항도 전략적으로 발표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공개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꼭 필요한 ‘패’를 드러낼 이유는 없다.

통상당국이 ‘상호 균형 잡힌 이익’이 되는 협정을 도출하겠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이번 개정협상은 한국이 ‘내주는’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 협정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 개정협상을 타결하기 위해선 고차원적인 협상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보다는 협상의 전체 틀을 우리나라에 유리하도록 전개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출처 -매경이코노미 2018. 1. 23[경제칼럼]
<원문>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8&no=47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