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안전불감증 못 고치면 痼疾(고질) 된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4000년 이상 그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태양의 도시’라 불리는 페루의 마추픽추는 15세기 중반 잉카인들에 의해 건설돼 경이로운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모두가 그들이 공(功)들인 노력의 산물이다. 공을 들인 만큼 결과도 좋거니와 오래 유지되는 것이다. 이 간단한 공식이 통하지 않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자주 일어나고 있다.

와우아파트가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상판이 갑자기 뚝 끊어지면서 내려앉고, 세월호가 가라앉는 가슴 아픈 일들이 되풀이됐는데, 어김없이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있었다. 모두가 공들이지 않고 겉모습에 도취한 결과였다. 세월호 침몰 사건만 하더라도 그 전에 유사한 사건이 적지 않았다. 1953년 부산 다대포항 앞에서 침몰한 창경호 사건, 1963년 전남 영안군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연호 사건, 1970년 거문도 인근 해상에서 가라앉은 남영호 사건…. 모두가 과적과 운항 부주의가 원인이었다. 인재였던 것이다.

21일 충북 제천에서 있었던 스포츠센터 화재사건도 그렇다. 공들이지 않고 안전을 소홀히 한 결과 소중한 인명을 잃은 것이다. 46년 전 이맘때 서울에서 거의 같은 화재사건이 있었다. 대연각호텔 화재 사건이다. 1층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이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삼키며 163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형 화재였다. 꽉 막힌 비상계단과 잠긴 옥상 문은 이번 제천 화재사건과 판박이였다. 이 또한 인재였다.

국민 모두가 안전 의식을 갖고 생활화하지 않는 한 안전사고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고, 유사한 재앙도 막지 못한다. 제천 화재사건 이후 소방관들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촌각을 다투며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은 장비 부족이라는 물적 한계 외에, 진화작업 때 발생한 손해배상 청구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과도 싸워야 한다. 지난 6년간 화재사고 시 소방관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액이 3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소방법상 화재진압 때 발생한 물적 피해와 관련, 소방관이 무과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배상 청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법의 취지와 맞지 않거니와, 그 적용이나 운영도 잘못된 것이다.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소방차를 가로막는 불법주차 차량으로 현장 도착이 늦어졌다는 보도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낀다.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채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화재 현장 주변 도로가 불법주차 차량으로 가득한 사진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하지만 캐나다의 어느 화재 현장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전혀 다르다. 소화전 옆에 불법주차된 고급 차량의 유리를 깨고 소화전 호스를 통과시켜 진화하는 사진이다. 화재진압에 방해가 된 불법주차 차량을 손상했다고 해서 소방관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말은 없다.

정치인들은 사고만 나면 서로를 향해 비난하기 바쁘다. 여야(與野)가 위치만 바뀌었을 뿐인데 어찌 그리 말이 뒤바뀌는지. 정치인들의 모습은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찍어낸 것이라면, 우리 모두의 인식과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면 정치도 바뀌고 나라고 나라다워진다. ‘내로남불’이라 꼬집을 게 아니라,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미비한 법제도 손질해야 한다.

사고 발생 때마다 거론되는 ‘인재’ ‘안전불감증(不感症)’이란 말이 더는 나오지 않게 하려면 정부·정치권의 법제 보완과 국민의 안전의식 고취가 필수다.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7. 12. 27[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1227010739110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