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 무역보복 전략 준비해야

우리나라가 미국을 상대로 무역보복을 실시하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무역보복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멕시코 등 대미 교역흑자국을 상대로 위협하고 있는 정책수단이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우리가 미국을 상대로 보복을 실시하는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정부는 곧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 수출에 대해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미 대통령에게 세탁기 및 부품 수출물량 각각 120만대 및 5만대 초과분에 대해 50~4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권고했다.

이러한 권고안을 미 대통령이 채택하면, 세탁기의 대미 수출은 5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르면, 세이프가드를 취하는 회원국은 상대국이 입은 손해를 보상해주어야 한다. 이때 상대국은 보상안에 합의해주지 않고 무역보복을 선택할 수도 있다. 단, 절대적(상대적이 아니라) 수출증가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세이프가드를 실시한 경우는, 이에 대해 최초 3년간은 보복을 행사할 수 없는 제한이 가해진다. 트럼프 정부의 행태를 고려할 때, 우리 측에 보상을 해주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럴 경우 반 토막 난 수출 손실에 상응하는 규모의 보복을 미국의 수출품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우리 권리를 현명하게 행사하는 방안을 미리 기획해두어야 한다.

정부는 미국 측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해 검토한 후, 베트남 등 이해관계국과 공조해 WTO 패널에 제소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트럼프 정부가 철강, 태양광 전지, 페트(PET) 수지 등에 대해 전방위적인 반덤핑 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 또한 WTO 제소를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트럼프 정부는 미국 주권을 제약하는 WTO 패소 판정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므로, 우리가 승소하더라도 미국이 판정을 이행하지 않는 사태가 다수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WTO 협정은 승소국이 상응하는 무역보복을 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미 측의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한 보상 보복, 그리고 WTO 판정 불이행에 대한 보복을 실시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WTO 협정 자체가 인정한 무역 보복의 권리조차 우리가 적시에 행사하지 못한다면, 트럼프식 과도한 무역구제 조치 전략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우리 측이 WTO에 보복 권한을 신청함에 있어서는 보복의 정도와 그 계산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보복의 대상 부문도 아울러 제시해야 한다. 보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국 내 정치적 함수관계를 감안하여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문에 대해 보복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시기에는 선거의 핵심지역 산업들이 보복의 대상이 되도록 보복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단, 원칙적으로 판정 불이행이 발생하고 있는 산업 부문과 동일한 부문을 보복 대상으로 지목해야 하고, 이러한 보복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우 상황의 심각성을 입증한 후, 다른 산업 부문을 타깃으로 보복(교차 보복)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한미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실제로 무역보복을 우리 측이 행사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보복 가능성을 지렛대로 삼아 문제를 양자적으로 해결토록 유도하는 전략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제한 없는 교차보복이 허용되어 있고, 패널판정 이행에 갈음하는 금전배상제도가 채택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미 측의 불이행이 예상되고 우리 측이 금전으로 배상받는 것이 바람직한 성격의 분쟁인 경우, WTO보다는 한미 FTA상 패널 절차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미 측의 불이행에 따른 우리 측의 보복의 부담을 금전 배상이란 대안으로 경감시키는 전략도 구사해 볼 만하다. 트럼프 시대에 권리 위에 잠자는 국가는 더욱 압박과 제재의 타깃이 될 뿐이다.

최원목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매일경제 2017. 12. 12[인사이드칼럼]
<원문>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822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