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남방 교역 다변화 기대 APEC 아태협력 주도 필요

매년 11월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베트남 다낭에서 열렸다. 올해 APEC 정상회의 주제는 ‘새로운 역동성 창조, 함께하는 미래 만들기(Creating New Dynamism, Fostering Shared Future)’로 설정됐지만, 거창한 목표에 비해 실행력을 갖춘 세부 계획은 취약한 편이다. 주제가 매년 조금씩 바뀌기는 하지만 지난 20여년간 정상회의 선언문을 살펴보면 아태지역 무역 자유화 달성,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번영, 인적자본 개발, 개도국 역량 강화, 중소기업 협력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APEC에 대한 세계 경제의 관심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93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아태지역 중시 정책인 ‘신 태평양 공동체(New Pacific Community)’ 창설을 제안하고, 그해 11월 개최될 APEC 각료회의를 정상회의로 격상하는 걸 제안했던 시점이다. 미 행정부는 이듬해 정상회의 주최국인 인도네시아를 설득해 보고르 선언을 APEC 목표로 설정했다. 보고르 선언은 2020년까지 전 회원국이 무역 자유화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1994년 1월 1일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됐고, 그해 2월에는 기존 유럽공동체(EC)가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기에 세계적인 무역블록화 현상에 뒤처진 아태지역 국가들이 보고르 선언에 큰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후 보고르 선언은 매년 정상회의 선언문에 포함될 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2014년 정상회의 개최국인 중국이 미국이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대응 방안으로 2004년 정상회의(칠레 산티아고)에서 처음으로 거론된 아태지역자유무역지대(FTAAP)를 다시 제안하기도 했다. 2017년 베트남 다낭 정상회의 선언문에도 보고르 무역 자유화 목표 달성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자간 무역 자유화 협상에 미국이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 정상 간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던 것으로 비쳐졌다.

APEC은 세계 1~3위 경제국가를 포함하고 있고, 아태지역 대부분 국가가 참여하는 세계 최대 지역 경제 협력체다. 세계 GDP의 52%, 교역량 45%, 인구 41%를 점하고 있어 외형상 높은 경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비쳐지지만, 창설 이후 30년이 된 지금 APEC은 ‘말만 많은’ 모임으로 변질됐다.

물론 매년 개최되는 정상회의를 통해 양자 간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는 장으로 활용돼온 점은 높게 평가된다. 이번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한중정상회담이 개최돼 그동안 문제 됐던 사드(THAAD) 배치로 인한 양국 간 통상마찰 해소를 논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우리나라는 신남방정책을 발표해 앞으로 동남아 국가와의 교역 규모를 획기적으로 증대시켜나가기로 했다. 중국과 미국에 치우친 대외 경제관계를 다변화시켜 안정적인 수출 시장을 개척해나가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APEC의 경제 분야 역할이 부진한 것은 구속력 있는 협정이 아닌 논의기구 성격인 포럼으로 출발했고, 논의를 주도하는 국가가 없는 가운데 회원국 간 격차가 커 논의사항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APEC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현저하게 약화됐고, 최근 중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미중 경쟁구도가 가시화돼 아태지역 경제협력 기반은 사실상 와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APEC 정상회의와 동아시아 정상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아시아를 순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태평양(Indo Pacific)’ 전략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취지이므로 향후 APEC 논의 발전 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매경이코노미 2017. 11. 27 [경제칼럼]
<원문>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7&no=784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