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 L과 혁신성장

경제학에서 다루는 생산함수에는 세 가지 변수가 등장한다. 기술수준(A) 자본(K) 그리고 노동(L)이 바로 이들이다. A, K, L은 그만큼 중요한 변수들이고 실제 경제분석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당하기 직전 당시 미국 MIT 대학에 재직하던 크루그만 교수는 포린어페어스라는 잡지에 유명한 기고문을 게재하였다. 그는 대한민국 경제의 성장이 기술수준의 제고보다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증가에 주로 기인하였는데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증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남짓 된 시점에서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당했고 크루그만 교수는 동아시아 위기를 예언한 인물로 평가되면서 결국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물론 그의 주장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인용한 이론들이 경제 성장 현상을 분석함에 있어서 A, K, L 의 시각으로 접근을 하여 다양한 함축적 의미를 찾아낸 부분은 매우 의미가 크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고 있다. 비판적인 시각에 있어서 명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주장한 ‘임금주도’성장이 ‘소득주도’성장으로 바뀌면서 듣기는 좋아졌지만 명칭과 내용이 상치된다는 지적이 많다. 받는 입장에서는 임금이 소득이지만 지급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은 인건비 내지 생산비용이 된다. 임금을 올리면 생산비가 당장 증가하고 기업 경쟁력은 저하될 수 있다. 사실 거시적으로 보면 임금 지대 이자 이윤 등이 다 소득이다. 따라서 진정한 소득주도성장정책이라면 이윤의 증가도 언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임금인상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명칭에 문제가 있다.

진정한 경제성장을 하려면 기술수준 제고, 자본스톡 증가, 그리고 노동의 양적 질적 증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최근 기업에 대한 정책을 보면 의문이 드는 구석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정부는 R&D 세액공제를 축소하고, 법인세를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기술수준 제고가 일어나기가 힘들고 투자증대도 기대하기 힘들다. 노동의 질적 양적 수준의 증대를 도모해야 하는데 그냥 임금부터 올리면 기업은 노동 가격이 비싸지는 상황에서 노동투입을 오히려 줄이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음식점이나 패스트푸드 점포에 자동주문기가 설치되면서 주문을 받는 근로자를 줄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야간 무임점포로 운영되는 편의점이 나타난다는 소식도 접하게 된다. 임금만 덜커덕 인상 하면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최근의 정부정책을 보면 기업 투자증대나 기술수준 제고를 위한 유인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노동이나 자본의 투입량 중가나 기술수준제고가 벽에 부닥치는 경우 경제성장은 요원해지고 원하는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북핵으로 인해 우리 경제의 기업 입지여건은 악화되고 있다. 탈원전 정책 추진 속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로 인한 전기료 인상이 장기적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입지여건을 악화되고 우리 경제는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혁신성장 어젠다는 매우 의미가 있다. 늦었지만 반가운 움직임이다. 향후 발표될 혁신성장의 어젠다에는 기술수준 제고, 투자활성화 등을 위한 각종 유인체계가 담겨야 한다. 다양한 친기업적 정책과 규제완화정책 등이 혁신성장의 어젠다를 통해 추진되는 경우 본격적인 성장이 재개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흐름에 뒤쳐지면 안 된다. 4차혁명으로 불리는 커다란 흐름에 동참하면서 새로운 경제체제의 구축에 전면적으로 나설 때이다. 혁신성장에 어울리는 좋은 정책들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 당분간 우리 경제의 흐름은 부진해지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이데일리 2017. 10. 23 목멱칼럼
<원문>http://www.edaily.co.kr/news/news_detail.asp?newsId=01200486616095872&mediaCodeNo=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