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중국 LCC 파고, 혁신으로 넘어라

작년 한 해 38억명의 여행객이 비행기를 탔다. 세계 항공업계는 항공여객과 항공화물은 각각 8.6%, 10%씩 증가하면서 사상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ICAO와 국제기구들은 향후 20년간 항공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세계경제 성장률의 두 배 이상으로 예측하고 있다. 아시아지역은 단연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낮은 운임으로 새로운 항공수요를 창출하는 동남아국가들의 저비용항공(LCC)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LCC는 이 지역에서 이미 여객의 55%를 담당하면서 관광시장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세계 항공시장의 성장점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2002년 정부의 민간항공총국(CAAC)관리 하에 두었던 6개 항공사들을 4대 민간그룹으로 분리시키면서 규제를 풀고 경쟁체제로 전환했다. 시장진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지금은 중소형 항공사를 포함 CAAC에 등록된 항공사는 모두 300개사가 넘는다. 숫자만으로 보면 140여 개의 미국을 능가한다. 항공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중국은 남방항공과 동방항공, 에어차이나 3사를 세계 10대 항공사의 반열에 올리면서 미국의 주도권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풍부한 관광·비즈니스자원과 잠재된 항공수요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야심은 인프라 구축에서도 드러난다. 2020년까지 중국 전역에 260개의 거점공항이 완공된다. 계획대로 2030년까지 400개가 건설된다면, 세계 항공인프라의 약 10%는 중국이 제공하게 된다. 중국의 항공산업발전계획에 따르면, 항공기 취항이 집중될 셔틀서비스 대상에 외국으로는 한국 노선이 유일하게 포함돼 있다.

팽창일로를 질주하는 중국. 그런데 최근 고민이 시작됐다. ASEAN 10개국들과 맺어 놓은 항공자유화협정 때문이다. 시장개방에 따라 노선개설이 자유로워지고 운임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가격과 공급에서 우위를 지닌 동남아의 LCC들이 중국노선을 빠르게 늘여 중산층 여행객들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아세안(ASEAN) 국가들의 LCC들은 이미 자국시장의 60%를 차지할 만큼 막강한 마케팅능력까지 갖췄다.

중국의 응전은 항공정책의 변화로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다. 가격우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중국의 선택은 LCC시장의 본격적인 진입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춘추항공을 비롯한 몇몇 LCC를 통해 저가시장을 참여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5%를 밑돈다. 앞으로 지역공항 거점의 항공사가 등장할 경우, 중국의 항공시장은 현재의 대형항공사와 지역거점의 LCC항공사로 이원화되고 내부경쟁과 해외진출을 시작하면 아시아의 시장판도는 크게 바뀔 것이다.

국내 항공업계에는 여객증가와 유가하락으로 호조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운임과 서비스의 경쟁우위보다는 경영환경의 호전이 가져다 준 불안한 순항이다. 중국에서 다가오는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 10여 년 간 국내의 LCC시장은 새로운 수요 창출로 정착에는 성공했지만, 지금부터는 중국을 비롯한 외국의 LCC와 치열한 경쟁을 시작하는 제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협소한 국내시장보다는 항공자유화를 통해 국적항공사들의 활동무대를 넓히는 글로벌 전략을 서둘러야 할 때가 지금이다.

최근 청주와 양양, 포항 등의 지방공항을 거점으로 취항을 준비하는 신설 LCC의 사업면허를 놓고 시장포화와 과열경쟁의 목소리가 높다. 시장포화란 수용력을 초과하고 있는 인천과 제주, 김해공항에 해당될 뿐 국제노선에서 지속적으로 여객수요가 늘어나는 현실에서는 맞는 말이 아니다. 돈이 되는 시장일수록 새로운 사업자가 늘어나고 경쟁이 과열되는 것은 당연한 시장현상이다.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항공사들일수록 경쟁력이 강화되고 소비자의 편익은 증대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항공자유화정책에 모두 성공했다. 보호주의를 탈피하고 전면적인 경쟁에 나선 결과다. 1998년 IMF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주도했던 항공자유화협정의 결과, 당초 업계의 우려와 달리 초기에 국내시장에 대거 진출했던 미국의 항공사들은 경쟁에서 밀려 노선을 대거 철수시킨 반면, 국적항공사들은 지금 미국노선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2006년 중국 산동성과의 전면적인 항공자유화는 운항횟수가 늘어나면서 양측이 모두 만족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방향의 항공자유화로 외국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제주도 역시 항공을 통해 지역경제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신설 항공사들의 시장진입은 적자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지방공항에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88개에 달하는 인구 5백만 명 이상 규모의 도시마다 LCC 신설에 대한 중국의 구상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중국 LCC들과의 제휴와 공급능력의 확대, 동남아지역에 거점으로 둔 중국 노선의 개발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서서히 다가오는 중국발 위기는 지금 항공업계의 혁신과 정부의 새로운 글로벌 산업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디지털타임즈 2017. 10. 6 포럼
<원문>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7100602109969052001&ref=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