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개정협상 개시, 누구를 위한 제안인가

한미 양국 간 공동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지 않고는 FTA 개정 실무협상에 임할 수 없다고 버티던 정부였다. 그것이 대미 초강경대응이라 FTA 재협상 국면에서의 협상력을 높이고 협상의 시기를 늦추는 방안이라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9월 21일 오히려 미국 측에 제2차 특별공동위 개최를 자발적으로 제안하며, 실무협상 개최를 기정사실화했다. 특별공동위를 요청한 국가가 상대국 영역으로 들어가 협상에 임해야 하기에 워싱턴에서 협상을 벌여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의 배경에 대해 정부는 "미국 측이 우리의 한미 FTA 공동조사 제안을 거부하고 대신 다음달 발표하는 무역적자보고서로 대체하려 하기에, 그 전에 미국 측의 답변을 얻어내려는 것"이라는 궁색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런 답변이라면 여러 외교채널을 통해 얻어낼 수 있기에 굳이 제2차 공동위까지 열면서 얻어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공동위를 개최하게 되면 미국 측이 답변하기는커녕 협정 개정 요구 보따리를 또다시 풀 것임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런 비논리적인 변명까지 동원하고 있는 정부를 보면 그동안의 사태 진행과정에 대한 심각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9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FTA 파기를 언급한 후, 9월 6일 갑자기 FTA 파기 검토 중단을 선언했다. 우리 정부가 내세운 그 이유를 보자. FTA 파기를 논의하는 것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미동맹이 중요한 시점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발이 미국 내부에서 제기된 데 따른 것이라 했다. 천하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 정도 내부 반발에 물러선 것도 이해가 가지 않을뿐더러, 미국법상 대통령의 전권사항(1974년 통상법 125조)인 FTA 파기 선언을 일부 의원들의 반발로 인해 접었다는 설명도 석연치 않았다.

이젠 그동안의 진행과정이 모두 이해가 간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FTA 파기 언급에 놀란 우리 정부 측에서 물밑 접촉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FTA 개정 협상에 임하겠다는 약속을 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래서 트럼프 진영은 한국 측이 먼저 특별공동위 개최를 제의해오는 것을 조건으로 FTA 파기 검토 지시를 철회했던 것이리라. 그 후속 조치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방미까지 하여 제2차 공동위 개최를 미국 측에 제의하게 된 것이고, 이제부터는 워싱턴의 주도로 FTA 개정 실무협상이 열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필자의 추론이 맞는다면, 전략적 사고 부재와 주먹구구식 대응이 낳은 통상외교의 참극 수준이다.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의 사전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가뜩이나 중요한데, 우리 측은 먹히지도 않는 FTA 효과 공동연구 주장만 고수하여 트럼프 대통령 선에서까지 FTA 파기 언급이 나오게 만들었다. 원래 NAFTA 재협상보다 우선순위가 낮은 한미 FTA 개정 이슈를 이제 오히려 미국 측의 최우선 공격목표로 만드는 부작용만 낳았다. 그러고도 FTA 효과에 대한 공동연구에 이르기는커녕, 이미지만 구기고 백기투항 형태로 워싱턴DC에서 개최되는 개정실무협상장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측 통상전략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는커녕, 아직도 워싱턴에 가서 FTA 효과 공동연구 주장에 대한 답변을 미국 측에 요구하겠다고 한다. 정말로 그렇게 하려 한다면 브레인이 없는 수준이고, 상대방에게 백기투항한 사실을 밝힐 수가 없기에 둘러대는 변명이라면 무책임하다. 중차대한 한미 FTA 개정 협상 문제를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 눈앞이 캄캄하다.

통상협상은 하나도 국익이고 열도 국익이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모든 전략을 재검토하여 국익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재정비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통상협상가들로 하여금 상대국들과의 치열한 투쟁과 국내 이익집단들로부터의 공격을 받아 입은 무수한 상흔이 오히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다. 관료주의적 행태를 반복하며 조직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를 저해하는 국면을 스스로 덮어버리는 술수를 용인하고 있고, 이를 국내용 언론플레이로 버티려 하고 있는 현재의 행태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매일경제 2017. 9. 26 [인사이드칼럼]
<원문>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646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