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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국가인'이다 - 박효종
2004-03-04
대통령은 '국가인'이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에 대하여 야당이 크게 반발하자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도 정치인인데 어디에 나가서 누구를 지지하든지, 발언하든지 왜 시비를 거느냐”면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서 법리적 해석이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법조문 자체가 쟁점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법 60조는 국회·지방의원을 제외한 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으나, 58조에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 개진은 선거운동 범위에서 제외했다. 그러므로 법에 저촉되느냐의 문제보다는 정치적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대통령이 정치인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당적을 가진 정치인으로 대선에 출마했고 무당적이라고 하나 열린우리당의 대표주자와 다름없다. 당연히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은 선거에서 이겨 번듯한 여당을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정치인’인 동시에 ‘국가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치인(politician)’은 일정한 파당적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지만 ‘국가인(statesman)’은 공적 이익과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정치인’과 구분되는 ‘국가인’이라는 표현은 이미 2500년 전 플라톤으로부터 나온다. 지금처럼 모든 것은 경쟁이며 경쟁에서 이겨야 정당성을 인정받는 다원주의 사회에서도 ‘국가인’이 대변해야 할 ‘공동선’은 존재한다. 우리는 특히 국가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 즉 일본 총리가 전범이 묻혀 있는 야수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한국민을 비하하는 망언이 터져 나왔을 때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게 된다. 대통령은 개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국민 모두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아니라 ‘지휘자’로 비유된다. 어느 한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통합과 조화를 도모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비록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단원 가운데서 나왔다 하더라도 전체를 대표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국가를 대변하는 것은 대통령의 특권이며 책무이다. 대통령이 초당적 지지나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당파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가를 대변하는 ‘국가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의 발언뿐 아니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TV나 언론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것도, 대통령 이외에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이 없는 것도 바로 ‘국가인’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때때로 국가를 대변하는 것이 당파를 대변하는 경우와 상충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 경우 어떤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선거야말로 ‘국가인’으로서 대통령의 역할을 시험하는 자리일 터이다. 대통령은 선거의 당사자이며 동시에 선거를 관리해야 할 입장에 있다. 흔히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관리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각론적 입장일 뿐 총론적 입장은 아니다. 만일 불공정성 문제 때문에 야당이 총선을 보이콧 한다든지 혹은 대통령을 탄핵할 움직임을 보여 정국이 소용돌이 칠 때 그 책임은 중앙선관위가 아닌 대통령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선거관리의 책임을 감안할 때 대통령은 심판의 역할이다. 심판의 덕목은 중립성이고 그 중립성은 곧 공정성이다. 중립성은 불편부당성과 통하기 때문이다. 물론 심판이라고 경쟁하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한 편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심판보다는 열린우리당의 ‘서포터스’로 나서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경기 전체를 운영하는 심판으로서 선수들의 반칙을 가려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렇지 않고 선거 결과에 과잉집착한 나머지 ‘서포터스’처럼 행동한다면 선수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국가인으로서 ‘심판’의 역할이지 정치인으로서 ‘서포터스’의 역할은 아니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4. 3. 4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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