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해저드 낳는 부채 탕감, 제한적으로 추진해야

[이슈칼럼]문재인 정부 부채 탕감 정책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이 1360조원을 기록했다. 개인사업자 대출 268조원(지난 4월말)을 합한 전체 가계부채는 1628조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9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5%를 크게 웃돌았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OECD기준)도 2008년 금융위기시 143%에서 지난해 174%로 계속 높아졌다. 이는 가계소비여력을 제약해 GDP(국내총생산)의 5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미국은 2008년 135%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지난해 105%로 낮아져 민간소비 회복이 경기회복을 견인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8월까지 가계부채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예상되는 대책으로는 가계부채 총량제 도입, 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DSR) 조기 도입,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법정 최고금리 인하, 생계형 빚 탕감 등이다.

이 가운데 생계형 소액 장기연체 부채 탕감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 연체 채권을 완전 소각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현재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소액·장기연체 채권 규모는 지난 3월말 기준 1조9000억원, 대상자는 약 43만7000명으로 추산된다.

부채 탕감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신용등급 7등급 이하에 대해 빚을 탕감해주고 연체 기록을 삭제하는 720만명의 신용대사면을 공약했고 박근혜 정부 때 역시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해 322만명의 채무불이행자에 대해 빚 탕감을 약속했다. 실행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 논란, 재원 문제 등으로 대부분 규모가 축소돼 이명박 정부는 72만명 신용대사면, 박근혜 정부는 66만명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번 문재인 정부의 공약은 과거의 원리금 일부 탕감과는 다른 완전 소각을 주장하고 있어 더욱 큰 도덕해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채무자와 형평성 문제도 야기한다. 재산을 숨겨오거나 소각 후 재산이 발견될 경우의 문제도 제기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부채 탕감 대상을 1000만원 이하에서 5000만원 이하로 확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소멸시효가 지난 소액채권에 대해 소멸시효를 연장하지 않고 채권을 소각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은행 채권의 경우 연체 시작일로부터 5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는데 이 때 은행들은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장애인 등 특수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여금 청구소송을 걸어 소멸시효를 10년씩 연장해가며 빚을 회수해왔다.

이와 같은 광범한 소액·장기연체 채권 소각은 취약계층 재기를 돕는다는 좋은 취지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실 1000만원 이하 채무를 10년 이상 장기연체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상환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런 면에서 이들 취약계층의 소액·장기연체 채권의 소각은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 바람직한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당장 이렇게 되면 앞으로 가능하면 빚을 갚지 않고 버텨보려고 하는 도덕해이가 만연될 우려가 있다.

아직 완전히 전산화되지 않고 있는 소득 및 재산 실태와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 속에서 채무자의 소득과 재산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또 가족과 친지간에 재산을 은닉하는 경우 어떻게 파악해 어떤 계층에 혜택을 줄 것인가 하는 실무적인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대규모 빚 탕감이 이뤄지면 앞으로 취약계층이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지금도 연평균 금리가 30%가 넘는 대부업 대출잔액이 13조원, 연평균 금리가 111%인 불법 사금융 사용액이 24조원에 이르고 있다. 잘못하면 취약계층을 대부업이나 불법사금융으로 내몰아 돌아오기 힘든 빈곤층으로 추락시킬 우려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는 금융기관 스스로 원리금 일부 탕감과 상환기간 연장 등 채무재조정을 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그래도 상환이 어려운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완전소각보다 신용회복위원회와의 계약 등을 통해 일부 원리금 상환 노력이 입증되는 경우 잔여 원리금을 탕감해주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머니투데이 2017. 6. 8 [이슈칼럼]
<원문> http://news.mt.co.kr/mtview.php?no=2017060709164326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