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개혁 제대로 하려면

검찰과 국방부에 이어 외교부가 정부개혁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 당시 외교부의 순혈주의를 타파하고 민간 전문가들에게 고위직을 개방할 뜻을 밝힌 바 있다. 대사직의 30~50%를 민간 전문가들에게 개방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 정권하에서의 통일 대박론과 대북한 흡수통일 전략, 중국의 대북 조정자 역할에 대한 헛된 기대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과정에서의 손쉬운 타협, 조정자로서의 중국에 대한 기대가 깨진 상황과 갑작스러운 사드 강경정책으로의 회귀, 그에 따른 중국의 사드 보복, 뜬금없는 한일 위안부 합의 등 일련의 외교사태를 보면, 우리 외교가 최고권력자 그룹의 단편적 판단이나 일방적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집행해온 측면이 드러난다. 지정학적 약소국인 우리가 필수적으로 유지해야 할 기능인 전문 외교정책 기능의 부재로 인해 북한 핵 문제가 오히려 악화하고, 대중·대일 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그래서 지금 국민이 외교부 개혁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외교부 인사의 특징은 공관근무 등의 인연을 계기로 형성된 특정 인맥과 동문연락망 등을 통해 결속을 강화한 특정 학맥이 인사부서를 장악하여, 요직 보임을 독점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에는 특임공관장 인사 이외의 외교부 인사는 외교부 장관에게 전권을 위임한 측면이 있어, 장관을 정점으로 한 학맥-인맥 위주 인사관행이 강화됐다. 전 세계 공관을 3년 또는 2년 주기로 순환하며 보직을 수행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으며, 선진국 근무 직후 후진국에 보임하는 `온탕·냉탕 전통`도 있다. 이러한 관행은 진정한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커다란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지역 간 우열관계를 조성하고 인사권자에 대한 로비관행을 부추겨 왔다. 또한 타 부처와 달리 외교부는 6급 이하 직원이 만성적으로 부족하여, 실무지원 체제가 약하다. 이는 하위직들이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이 관행적으로 막혀 있어, 우수한 하위직 직원들이 타 부처로 떠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외교실무의 전문성 약화를 초래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각 부처 공무원들이 해외공관에 주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바, 주재관들의 외교부 귀속감이 약해 현지 공관장의 통솔력에 한계가 있으며, 부처 간의 영향력에 따라 주재관 TO와 파견지역이 결정되는 측면도 있다. 주재관 제도가 실질적인 대외 업무성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기보다 국내에서의 부처 간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제도로 형식화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여러 차원에서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우리 외교역량을 떨어뜨리고 외교정책의 부재 현상을 낳았는데, 정부는 외교부 순혈주의 타파와 민간 인사 충원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선 캠프나 과거 참여정부 출신 민간 인사들 가운데 청와대나 부처에 자리 잡지 못한 인사들이 대거 외교부에 입성하게 되면, 이러한 문제점들이 해결된다는 말인가.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대사직의 30% 이상을 채우면, 우리 외교가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정권의 스타일 맞추기에 할애하도록 구조화된 전례를 더욱 심화시키게 될 뿐인데도 말이다. 이젠 외교부 장관이 아니라 청와대가 특정 인맥 위주 인사를 행하겠다는 말인가. 문제의 본질엔 눈 가리고 자기 사람 챙기기식의 개혁을 해서는 안 된다. 냉탕지역 근무여건을 더욱 개선하고 인사점수에 반영하여 냉탕지역에 대한 자발적 전문 트랙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하위직 출신이 일정 수의 국장직위에 상시 임명되도록 제도화함으로써, 하위직 공무원들이 소명감을 갖고 평생근무하도록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해외공관 지역의 공관, 진출기업, 재외국민 등을 상대로 주재관에 대한 수요를 전면 재조사한 후 이에 따라 주재관 배치제도를 단계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인맥과 학맥에 의한 인사관행을 근본적으로 시정하기 위해, 인사담당자 라인을 외교직이 아닌 HR 전문가들로 임명하고, 인사위원회의 결정 과정에 중립적 외부위원을 다수 참여시켜야 한다. 실국 단위로 소규모 외부자문회의를 수시로 개최하는 상시 외교자문위원회 제도를 정착시키고 외교아카데미를 진정한 의미의 외교 싱크탱크 조직으로 개편하여 장기적 외교비전을 비판적으로 제시토록 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 해결 방안 없이 공관장 자리만 더욱 정치색이 짙은 사람들로 바꾼다면, 현정권 말기쯤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세계 곳곳에서 들려올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매일경제 2017. 8. 22[인사이드칼럼]
<원문>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7&no=563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