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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람과 불안의 1년 - 배규한
	2004-02-24
	[자료집]임을위한행진곡긴급토론회.pdf
놀람과 불안의 1년 21세기를 맞이하고도 새 시대를 느끼지 못했던 한국인들은 2002년 들어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었다. 6월 월드컵 기간에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 세대의 활력과 역동성에 놀라고, 12월 대선에서는 정치적 기반이 전무했던 노무현 후보의 승리에 놀랐던 것이다. 새 시대가 열리면서 국민의 절반은 새 대통령에게 큰 희망을 가졌겠지만, 나머지 절반은 낯선 대통령의 스타일에 심한 불안을 느꼈다. 2003년은 그렇게 절반의 희망과 절반의 불안 속에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는 노 대통령이 있었다.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은 불법정치·권위주의·연고주의·지역갈등·빈부격차 등 구시대적 모순을 새 정부가 청산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에 불안감의 근원은 친북·좌파·반미 성향의 이념성, 돌출적 감정표현, 대중적 인기 영합주의 등이었다. 지난 1년간 대통령 업적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긍정보다는 부정적 평가가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절반의 균형추가 불안 쪽으로 기운 것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가장 큰 기대는 정치개혁이었다. 과연 노 대통령은 당적(黨籍)을 버림으로써 정쟁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고, 거대한 불법 정치자금의 먹이사슬을 파헤침으로써 구태 정치의 틀을 깨뜨리고 있다. 그러나 ‘정신적 여당’이란 기이한 형태로 열린우리당과 특수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여전히 정쟁(政爭)의 한가운데 있다. 지난 1년간 국무위원 20명 가운데 무려 12명을 바꾸었는데, 장관 교체의 가장 많은 이유가 열린우리당 총선 후보 출마였다. 또한 여당의 자기반성은 없는 가운데 야당의 불법 정치자금만 크게 드러남으로써 수사의 편파성 시비를 야기하고 있다. 구태 정치의 또 다른 전형은 연고(緣故)에 따른 패거리 주의였다. 사적 인연에 따라 형성된 패거리 집단이 정치를 오염시켜 왔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야말로 이처럼 불합리한 패거리 정치를 청산해 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이른 바 ‘코드 인사’라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면서 능력에 따른 인사가 훼손되었고,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펼치겠다던 노 대통령의 당선 포부도 빛을 잃었다. 지역갈등을 완화하는 성과를 거둔 대신 이념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전 국민적 참여를 주창하는 ‘참여정부’의 기치와는 달리 진보 성향의 목소리만 키움으로써 보수집단의 격한 반발을 초래한 것이다. 부정적 평가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경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있다. 서민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민생경제 챙기기와 일자리 창출이었다. 그러나 서민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실업률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눈에 비친 정치는 여전히 경제를 도외시한 당리당략적 정쟁의 늪에 빠져 있다. 그리고 다수 국민들은 자주외교 논쟁보다는 세일즈 외교에 나서는 대통령의 실용적 모습을 갈망한다. 지난해 교육·노동·산업·국방 등에서 나타났던 정책혼선에 따른 사회불안도 더 이상 재연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타고 등장한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획기적 변화를 주도했고 앞으로 더 많이 바꿀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개혁코드가 맞든 안 맞든 노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수행을 바라는 마음도 모두 한가지다. 이러한 국민적 염원을 안다면 노 대통령은 모든 국민의 불안 요인을 잠재우고 희망적 기대를 채워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반적인 개혁의 방향 설정과 구호는 시대적 흐름과 맞더라도 문제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수범을 보이는 것이다. 총선에 올인하기보다는 민생에 올인해야 하며, 정치이념보다는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코드인사보다는 능력인사를 택하며, 현란한 말보다는 묵묵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 배규한 (국민대 사회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4. 2. 2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