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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는 미몽에서 깨어나라 - 박효종
	2004-02-11
	[자료집]커지는_연기금 공공투자 유혹.pdf
국회는 미몽에서 깨어나라 우리는 지금 국가 공동체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자연 상태에 살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향우회와 같은 ‘○○협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엊그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과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을 무산시키고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 석방 결의안을 통과시킨 국회를 보면서, 과연 이 나라에 국익의 수호자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당리당략이 설치는 것은 분명한데, 국익의 수호자는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총선을 낼모레로 앞두고 있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국회의원들은 국정 현안을 챙기도록 선택된 선량(選良)이다. 선량이라면 나라가 어려울 때, 살신성인(殺身成人)의 자세로 의정에 임해야 하지 않겠는가. 총선 불출마 선언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단기필마(單騎匹馬)로 FTA 비준에 나선다면 이 역시 감동을 주는 선량의 행위일 터이다.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린다면,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선량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셈이다. 가뜩이나 총선에 ‘올인’하느라 여념이 없는 청와대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하나 제대로 설득하고자 하는 열의를 찾아볼 수 없는데, 국회마저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제 할 일을 하지 않아 유감이다. 국회의원들에게 있어 아무리 지역 민심과 민의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국익을 고려하지 못할 정도의 ‘단견적’ 민심과 민의라면, 이들을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보다 정성껏 설득하는 ‘능동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런데 한 술 더 떠 마치 ‘농촌당’의 진성 당원인 것처럼 행동을 한다면 국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미 10년 전에 FTA보다 훨씬 더 어려운 쌀시장 개방을 하는 결단을 내렸다. 쌀시장 개방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뜨거운 감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국익을 챙기고 또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내다보는 눈들이 살아 있어 농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회가 농민들의 볼모가 돼 있는 상황이다. 또, 농민들의 거센 목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으냐 하는 자조적 분위기도 읽힌다. 하지만 농촌에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농촌의 이익도 포함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개진하기가 그토록 어려운가. 또, 이라크 파병도 마찬가지다. 파병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고 “당·정 협의를 더할 필요”를 느끼는 정당이 있다고 해서 한미동맹 정신에 입각하여 약속한 것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무책임 국회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국회를 ‘식물국회’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회기가 시작돼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 모이기는 하는데 하는 일은 없는 ‘무위국회’이다. 또,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3D기피의 국회’이다. 우리는 이 ‘냉엄한’ 국제 체제에서 경쟁력 없이 살아나갈 수 있는가. 이미 미국의 레스터 서로(Lester C. Thurow) 교수는 100년 뒤에 살아남는 국가를 예측한 바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한국은 빠져 있다. 한국은 어디로 갔는가. 현실을 보면 10년 불황도 끄떡없이 견디는 일본과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떠오르는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돼 있는데, 막상 우리는 우물 안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에 열중이다. 경쟁력 있는 국가공동체를 영위하려면 특히 국정의 책무를 맡은 사람들이 ‘프리 라이더(free rider)’가 아닌 ‘퍼스트 라이더(first rider)’가 돼야 한다. 그럼에도 무임승차자로 행동하고자 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무슨 얼굴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정으로 국익을 생각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정신이 지금처럼 요구되는 때도 없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본 경찰에 잡혀가 “잠잘 때도 독립, 깨어 있을 때도 독립, 밥 먹을 때도 독립만을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마찬가지로 독립된 국가의 국회의원이라면 자나 깨나 국익을 생각하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라가 어려운 경우를 당하면 어진 신하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에겐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는 어진 국회의원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다. 지금처럼, 돼야 할 일은 안 되고 되지 않아야 할 일은 되는 ‘아나키(anarchy)’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반드시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문화일보 2004. 2. 11 포럼